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병상 부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집에만 머물러줄 것, 모임을 자제해줄 것, 그것을 통해 감염 전파를 예방하기 위해 전국민적인 협조를 호소하는 것은 병상부족의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의료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 하도록 하고 있다. 통상 의료인에게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아 진료거부 시 형사책임을 진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한 병상 부족의 상황에서 의료인의 진료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헌법재판소 결정문(2018. 8. 30.자 2018헌마176)을 보면 의료인이 노력했음에도 부득이 진료를 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진료 거부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군병원 정형외과 군의관 A씨는 2016년 5월~9월 상관의 지시에 따라 하루 40명의 환자만 진료하고 그 외의 환자는 돌려보냈다.
군검사는 "청구인의 진료거부는 인정하되 초범으로 반성하고 있고 응급환자 진료는 거부하지 않았다"며 기소유예처분을 했다. 이에 군의관은 기소유예처분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군의관은 "상관으로부터 외래환자 진료를 하루 40명까지만 볼 것을 지시 받았다"며 "이를 따르지 않는 경우 질책을 받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외래환자 진료시간은 오전 2시간, 오후 3시간 등 5시간이었다. 매일 40명을 초과하는 외래환자를 배정받아 진료를 했다. 많게는 57명의 환자를 봤지만, 진료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군의관이 환자를 본 시간을 계산해보면 1인당 평균 7분 30초에 불과했다. 헌법재판소는 의사가 상관의 지시에 따라 이 정도의 진료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면 진료거부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언제 어느 환자를 어떤 이유로 진료하지 않은 것인지 등에 대한 조사 없이 진료인원을 제한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도적으로 진료거부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현장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다. 치료 중인 환자가 있는데 코로나 감염환자일지도 모를 새 환자를 받을 것인가.
코로나 환자를 치료할 병상 마련을 위해 치료 중인 환자를 퇴원시킬 것인가. 그 중 누구를 퇴원시킬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안타깝지만 법정에서도 진료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이 비극적인 상황은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한다. 사고는 예측불허한 상황에 갑자기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비극적이다.
이 사고를 당할 사람이 우리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국민 모두가 서로 조심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 오지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의 대표변호사) △서울대 간호대 졸업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전 서울대병원 외과계중환자실(SICU) △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사관, 심사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전문위원 △질병관리청 고문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 전문위원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전문위원 △서울시간호사회 고문 △한국직업건강협회 고문 △대한조산협회 고문 △전국보건교사회 고문 △대한간호대학학생협회 고문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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