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백두산아

시 김원구 · 곡 박경규

호수처럼 잔잔한 높은 천지엔
신비스레 하늘의 얼굴 비치고
아스라한 신화를 그리게 하는
신성하고 장엄한 백두산이여
아~~
내 한신들 그대 모습 잊으랴
굽이굽이 압록강 두만강 물
유유히 흐르는 민족의 소리
아~
백두산은 우리의 표상이어라
아~~~~


▲ 박경규 논설위원·의공학박사·작곡가
▲ 박경규 논설위원·의공학박사·작곡가

한국작곡가회에 입회한 1983년 3월. 첫 번째 창작음악회 발표를 앞두고 무슨 곡을 쓸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영산 백두산(白頭山)을 소재로 한 가곡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KBS한국방송 PD로 근무하며 친분이 있는 노(老) 음악평론가 김원구씨에게 노랫말을 부탁했습니다.

젊은 시절 일본과 만주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그는 가곡에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가곡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백두산은 사상적인 문제로 방송에서 자유롭게 언급할 수 없는 '금기(禁忌)의 산'이었습니다. 더구나 가곡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산으로 언젠가는 교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날을 그리며 작곡을 마음 먹었습니다.

대선배 작곡가들 조차 만들지 않았던 백두산 소제에 부담이 엄습했습니다. '나의 백두산 아'는 기존 서정가곡과는 다른 표현기법으로 구상했습니다.

다소 드라마틱한 곡으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작심했습니다. 당시 필자는 가곡 작곡의 초기시절로 처녀작 '모란여정(박목월 시)'에 이어 두번째 가곡이었습니다.

그 해 6월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한국작곡가회 정기 창작 가곡 발표회 무대에 '백두산'이 올려졌습니다. 청중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작곡가 금수현(그네), 김동진(가고파), 김성태(동심초), 김노현(황혼의 노래) 등 대선배들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백두산' 초연은 국제오페라단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던 테너 김진수씨, 지금의 음원은 1987년 테너 임웅균씨가 불렀습니다.

백두산을 소재로 한 첫 번째 한국 가곡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작곡후 23년만인 2006년 6월. 필자는 동해로 러시아 자루비노항(港)을 거쳐 만주벌을 지나 백두산 서파에서 북파로 14시간동안 등반했습니다.

2018년 9월에는 서해로 단동을 거쳐 KBS 입사동기 17명과 두번째로 백두산을 밟았습니다.

상상속에서 작곡해야만 했던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이 지닌 깊은 의미를 심연(深淵)의 고민 끝에도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 때문입니다. 그 영감을 보태기 위해 갈 수 있는 동해와 서해상의 루트를 통해 산에 오르며 촬영한 영상으로 편집해 담아냈습니다.

코로나19로 여는 2021년 신축년 새해. 세이프타임즈 독자님, 백두산 정기를 받으시고 힘내시길 기원합니다.

■ 박경규 논설위원·의공학박사 △작곡가 △KBS 프로듀서 △KBS 몬트리올 PD Correspondent △국악방송본부장 △국회환경포럼 정책자문위원 △대불대·동아방송대 교수 △한국음악치료교육학회 이사 △한국예술가곡연합 명예회장 △자랑스런 대한국민대상 수상 △문화관광부 저작권심의위원 △서울시청소년미디어센터 관장 △CLI바이오소닉 CEO △시와음악포럼 회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한국가곡방송 이사장 △가나에듀아카데미 원장 ◆저서 △건강과 음악치료 △명곡과 나 △쾌청 365 △음악클리닉 △안개꽃(작곡1집) △동강은 흐르는데(작곡2집) △연가곡집 편지(작곡3집) △가곡 대관령 등 300여곡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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