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새는 사람들(Nighthawks)'

▲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밤을 지새는 사람들(Nighthawks)' (1942·Oil on canvas·84×152.5㎝)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밤을 새는 사람들(Nighthawks)' (1942·Oil on canvas·84×152.5㎝)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근처 상점에 불이 꺼지고 거리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걸 보면 자정이 지난 지 이미 오래다. 인테리어도 별 볼 일 없고, 메뉴도 신통치 않아 보이는 이 카페에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와 앉은 이유는 뻔하다. 언제든 부담 없이 들어와 시간을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의 사용이 일상화된 후로 인류의 밤은 낮처럼 환하게 밝아졌고, 더불어 깨어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러나 밤이 길어진다는 게 누구에게나 좋은 일은 아니다. 도시의 밤은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이들로 인해 좀처럼 불이 꺼지지 않는다.

▲ 에드워드 호퍼 작품 '밤을 새는 사람들' 일부분.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 에드워드 호퍼 작품 '밤을 새는 사람들' 일부분.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카페 안의 손님 모두 겉모습은 화려하게 차려입었지만 왠지 가슴에 구멍 하나쯤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정서적인 허기가 느껴진다. 여럿이 함께 있지만 각자 아무 상관도 없는 타인들이다. 카페 안은 어두운 거리와 대비를 이루며 눈이 시리게 밝은 형광등 불빛이 사람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지만 오히려 이들을 작고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한때 서로 사랑했으나 이제는 무뎌진 연인 사이인지, 아니면 오늘밤 처음 만나 함께 어울리게 됐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흥미가 떨어져 시큰둥해버린 건지, 카페에 나란히 앉은 남녀의 관계를 단정 지을 만한 단서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붉은 립스틱에 짙은 화장을 한 이 여인은 집을 나설 때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다가 푹 꺼져버린 듯 생기를 잃었다.

▲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밤을 지새는 사람들' 일부분.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밤을 새는 사람들' 일부분.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남자와 함께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지 이미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는 종업원에게 팁으로 던져줄 지폐가 끼워져 있다. 아마도 따분한 이곳을 뛰쳐나갈 타이밍을 속으로 재고 있는지도 모른다.

카페 안에는 손님이 한 명이 더 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스스로 격리된 채 그는 홀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다. 얼굴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뒷모습이지만 그는 그림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화면의 무게중심이 이 뒷모습의 남자에게 쏠린다. 그의 등에 드리운 짙은 명암이 그의 존재감을 한층 더 묵직하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 에드워드 호퍼 작품 '밤을 지새는 사람들' 일부분.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 에드워드 호퍼 작품 '밤을 새는 사람들' 일부분.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형광등 불빛 아래선 도저히 생기기 어려운 억지스러울 만큼 작위적인 명암이 남자의 등에 표현됐다. 어두운 실내의 촛불 옆에서나 생길 수 있는 이런 극적인 명암의 대비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에서 주인공을 부각시키거나 주제를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던 기법이다. 이것은 고뇌와 우울감을 온몸으로 뿜어내며 혼자 앉아 있는 그가 이 그림의 주인공임을 알리는 화가의 암묵적인 사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미국)는 이 그림을 비롯해 도시 속에 소외된 인물들과 산업화로 변화를 맞은 도시의 풍경을 주로 그렸다.

그림 속의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이거나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호퍼는 산업화와 1·2차 세계대전 그리고 경제대공항을 온몸으로 겪으며 도시화로 변해가는 미국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고자 했다.

▲ 에드워드 호퍼 작품 '밤을 지새는 사람들' 일부분.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 에드워드 호퍼 작품 '밤을 새는 사람들' 일부분.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그는 세 차례나 유럽에 머물며 인상주의를 비롯해 큐비즘과 추상미술 등 여러 아방가르드 미술을 접했지만 예상 밖으로 바로크 미술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이런 이유로 그의 작품들은 발표 당시 시류에 역행하는 촌스러운 리얼리즘 회화라고 평가절하되기도 했으나 오늘날엔 미국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낸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미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의 그림에 자주 사용되는 인공적 조명에 의한 명암의 극적인 대비와 그림자 표현은 분명 바로크 미술의 그것을 차용했지만, 여러 비평가들이 그의 그림이 초현실주의에 가깝다고 입을 모을 정도로 당대의 시대적 자화상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담아냈다.

그런 이유에선지 현대의 광고디자이너들은 호퍼의 작품을 오마주한 광고물을 심심찮게 자주 제작하고 있다.

▲ 에드워드 호퍼 작품 '철로변 호텔'(1952) 부분(왼쪽)과 국내 대기업에서 오마주해 제작한 광고(배우 공효진, 공유 출연)
▲ 에드워드 호퍼 작품 '철로변 호텔'(1952) 부분(왼쪽)과 국내 대기업에서 오마주해 제작한 광고(배우 공효진, 공유 출연)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들면서 유목민으로 살거나 농사를 짓고 살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다닥다닥 붙어서 살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소외'라는 말은 거대 도시의 탄생 덕분에 생긴 신조어다.

지금은 인간소외라는 단어가 삭막한 도시의 삶을 대변하는 상투적인 표현이 됐지만, 호퍼를 비롯한 당대의 사람들이 직접 마주했던 인간소외 현상은 이제까지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지극히 낯선 것이었고, 충격 그 자체로 인식됐다.

그렇기에 도시화로 인한 고독과 소외는 그의 작품에 강력한 모티브로 작용하여 '호퍼 스타일'이라고 불릴 만큼 새로운 장르의 리얼리즘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 에드워드 호퍼 작품 '아침 햇살'(1952) 부분(왼쪽)과 오마주해 제작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 포스터.
▲ 에드워드 호퍼 작품 '아침 햇살'(1952) 부분(왼쪽)과 오마주해 제작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 포스터.

요즘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으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적 활동이 위축되면서 일상에서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공포와 집합금지의 후유증이 낳은 트라우마로 인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일명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겐 밤새 스마트폰이 외로움을 잊게 해주기도 하지만, 거리두기 단계에 따른 강제적 고립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우리의 삶이 우울 모드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여 일상을 되찾을 날이 머지않아 오겠지만, 일단 지금은 하루하루를 힘내서 살아내는 데 필요한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 에드워드 호퍼 작품 '밤을 지새는 사람들' 일부분.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 에드워드 호퍼 작품 '밤을 새는 사람들' 부분. ⓒ 미국 시카고 미술협회

다시 그림을 들여다보자. 어쩌면 호퍼는 이 그림을 통해 '삶은 누구에게나 외로움 그 자체이니 서러워 말라'고 우리를 위로하고 있은 건지도 모른다.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해보일 때 가장 서러운 법이 아닌가. 하향평준화는 상대적 박탈감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집단 구성원의 정서적 안정감을 높인다는 씁쓸한 통계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도 오늘을 사는 노하우일 것이다.

"코로나 블루... 너만 힘든 건 아닐거야."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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