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이슈분석 <26>소방차 해외기증 '안전' 담보돼야

국산 소방차의 해외기증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안전처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2005년부터 올해까지 내용연수가 경과된 소방차 182대를 베트남과 필리핀 등 11개국에 무상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일부 지자체와 단체도 자매결연을 맺은 외국에 소방차를 보내고 있다.

소방차를 외국에 기증하는 것은 저개발국가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순수한 인도주의 이념의 실천이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향후 대한민국 소방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데 어느 정도 연결고리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방차량 기증 전후에 고려해야 할 구체적인 프로세스와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있지 않아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실례로 2006년 에티오피아에 기증된 소방차는 장비사용법에 대한 교육부재와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상당수가 멈춰 서 있는 상황이다. 2014년 캄보디아에서는 태극기가 선명히 그려진 소방차가 시위진압용으로 둔갑한 경우도 있었다.

소방차는 소방대원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장비다. 기증할 차량은 외관만 그럴듯한 것이 아니라 차량의 안전과 효율성을 위한 정밀점검과 운용에 따른 사후관리가 필수적이다. 이런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람을 살리기 위한 장비가 오히려 사람을 상하게 하는 요물로 둔갑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소방장비 내용연수 고시'를 보면 소방펌프차와 소방물탱크차의 내용연수가 10년, 구급차는 5년이다. 이 기간이 지난 차량들이 정비와 도색과정을 거쳐 다시 해외에서 활약하게 된다. 내용연수가 경과된 차량이라 함은 실제로 사용은 가능하지만 사용하면서 발생될 문제가 다분히 내포된 상태로 안전기준 측면에서도 고려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방차를 충분히 보유할 수 없는 나라에서는 소위 굴러갈 수만 있다면 기증 받기를 희망할 수도 있다. 실례로 필리핀 소방국 관계자에 따르면 필리핀 일부 지역에서는 50년이 지난 소방차가 아직도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각 나라별로 대한민국 소방차의 내용연수와는 다른 기준이 존재한다. 어쩌면 그런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나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안전의 리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면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안전이 국적과는 상관없이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증하는 차량은 대한민국 안전기준은 물론이고 글로벌 기준에도 부합하는 차량이 전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해만해도 16대의 소방차가 해외에 무상으로 기증된다. 이를 위해 마련된 예산은 대략 9000여만원 정도다. 차량수리, 운송료, 적재품 구입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한 정비업체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10년 이상을 사용했던 소방차이기 때문에 정밀점검과 수리는 차량의 상태에 따라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몇천만원이 들 수도 있다고 한다. 과연 9000여만 원 남짓의 예산으로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소방차를 준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기증 전 고려해야 할 사항도 있다. 해당 차량의 보험정보, 정비이력카드, 전문가에 의한 상태 점검 그리고 정비업체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기증할 나라의 기후, 도로상태, 도로폭, 소방차 정비수준과 부품수급 가능성 여부, 해당국가의 언어로 된 사용매뉴얼 마련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해 기증 적합성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좋은 성능의 소방차량을 기증하는 것은 외국 소방대원의 안전을 위한 길이며, 그 나라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만약 미국에서 내용연수가 지난 장비를 우리나라에 기증했다면 과연 그 제품을 화재와 구조현장에서 믿고 사용할 수 있을지 말이다.

소방차량 기증은 'Made in Korea'라는 자부심에 글로벌 안전리더로서의 책임감을 더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행여 버려질 고철을 기증해서 차가 멈춰 서 있거나 애꿎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예산확보에서부터 기증 전후에 따른 구체적인 관리 프로세스와 가이드라인도 마련돼야 한다.

기증된 장비들이 해당국에서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제대로 운용하고 정비할 수 있는 전문가를 6개월 이상 현지에 파견하거나 해당국에서 봉사하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문 봉사인력과의 협업을 통해 교육과 기술전수에도 힘써주길 바란다.

"내가 사용할 수 없는 장비라면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없다"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이건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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