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10일 발굴현장 공개

▲ 해남 전라우수영 발굴 전경 ⓒ 문화재청
▲ 해남 전라우수영 발굴 전경 ⓒ 문화재청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해남군이 추진하는 해남 전라우수영 발굴조사에서 명량대첩 배후인 전라우수영의 중심 관아터 진출입 시설이 처음으로 발굴 조사됐다. 현장공개는 10일 오후 2시 30분 발굴현장에서 진행된다.

해남 전라우수영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으로도 유명한 곳으로 1440년(세종 22년)에 처음 설치됐다. 1895년(고종 32년)까지 450년 이상 유지된 군사적 요충지다. 발굴조사는 해남 전라우수영 정비사업의 하나로 중심 관아터에 대한 위치와 형태를 파악, 정비복원을 위해 시행됐다.

이번 발굴로 전라우수영의 수사(水使)가 기거했던 안채격의 내아 영역과 평시 또는 명량대첩에 사용되었을 동헌 건물 일부가 확인됐다.

중심 관아는 웅장한 규모의 축대, 담장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중심관아와 관아로 향하는 도로망의 진출입 시설도 확인됐다. 이외에도 건물 축조를 위한 토목과정과 중심 관아 영역 밖의 건물 등도 추가로 확인됐다. 유물은 우수(右水)명 초기 백자와 명문와, 막새류, 상평통보 등 수백여점도 출토됐다.

내아영역은 명량해협의 바다가 조망되는 능선 일부를 절개·성토해 대지를 조성한 후 외곽으로 계단식 축대와 담장을 둘러 주요 건물의 위상을 극대화했다.

처음 지어진 건물 2동은 온돌이 있는 구조로 15세기 후반에 큰 규모로 축조됐다. 16~17세기에는 대대적인 중창(重創) 과정을 통해 4동으로 확대된다. 중심 건물은 4칸 규모의 'ㅁ'자 형태로 한가운데 마당[중정 (中庭)]을 갖추는 구조로 확인됐다. 주변 건물은 창고같은 부속시설로 판단된다.

동헌 영역은 현재 건물지 일부와 축대, 진출입로가 확인됐다. 건물은 남아있는 5칸으로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행각(行閣) 건물로 판단된다. 축대는 남쪽은 점판암재로 높고 웅장하게 축조했다. 동쪽은 계단식으로 높게 해 타 영역과 구분했다. 진출입 시설은 우수영내의 도로망 중심축으로 한 곳은 남쪽 객사 추정지로, 다른 곳은 동문으로 향하는 시설이 확인됐다.

특히 동쪽 주 출입로는 근대까지 이용했던 곳으로 명량대첩의 이순신 장군을 포함한 수많은 장수들이 모여 회의를 하기 위해 행차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초기 백자는 중앙 관요산으로 여러 점에 우수명이 새겨져 있으며 지방관요 출토품도 여러 지역에서 상납된 것으로 파악된다. 기와류는 막새류, 연호명 명문와 등이 출토돼 건물의 사용과 성격을 찾을 수 있었다.

문화재청은 "발굴조사로 명량대첩의 배후인 전라우수영의 중심 관아터에 대한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해남군은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우수영의 전모를 추적하고 명량대첩과 관련된 자료 등도 찾아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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