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고온다습한 환경과 온천이 많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입욕문화가 발달했다. 한국은 입욕보다는 따뜻한 곳에서 몸을 덥혀 땀을 내게 하는 찜질을 즐긴다. 일본은 입욕(入浴)문화, 한국은 찜질문화라고 한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문화상품으로 발전, 세계에 알려진 '찜질방'이 등장한 것은 17년전이다. 찜질방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역사 속에서 조상의 지혜를 찾아볼 수 있다.

찜질방의 유래는 크게 두가지 설이 있다. 독특한 한국 고유의 난방방식과 도자기(옹기)가마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고구려시대 때부터 사용했다는 아궁이와 구들장을 이용한 '온돌'이라는 고유의 난방방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바닥 구들장을 뜨겁게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불을 때는 아궁이 위치 때문에 자연스럽게 윗목과 아랫목이 생긴다. 머리는 시원한 윗목에, 발은 뜨거운 아랫목에 두고 누웠을 때 자연스럽게 '두한족열(頭寒足熱)'이 돼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건강 난방방식이라고 할수 있다.

어르신들이 몸살기가 있다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 후 이불을 덮고 찜질을 한 뒤 개운해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같은 독특한 온돌 난방방식이 지금의 찜질방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도공들은 도자기(옹기)가마의 영향으로 무병장수 했다고 한다. 최근에도 장수하는 도자기 장인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도공의 장수원인을 추정해보면 도자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적외선과 음이온이 풍부한 온열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도자기나 옹기를 구운 후 도기를 밖으로 꺼낼 때 가마 내부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높은 열이 발생, 가마니 등을 쓰고 내부로 들어가야 했다. 이 때 원적외선과 온열로 엄청난 양의 땀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꿀을 입에 머금고 들어갔다. 도자기 반출이 끝나면 소모된 에너지와 땀으로 배출된 미네랄을 보충하기 위해 '미역국'을 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이 조선시대 한증막으로 발전했다는 설이다. 미역은 현대에도 찜질방이나 한증막에 가면 먹는 필수음식으로 인식돼 있다.

별다른 의료시설이 없었던 고려시대의 도자기(옹기)가마는 민간에게 유용한 의료시설이었다. 이것이 조선시대로 넘어와 한증막으로 발전했고, 민간에서 관리하면서 종종 발생하는 사망사고로 세종때는 국가관리 의료시설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지금의 찜질방의 기원이라고 하는 설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국내 최고의 문화상품이었던 ‘찜질방'은  최근 침체기를 걷고 있다. 당시 상황과는 다르지만 조선시대 세종대왕님께서 보여주었던 대응방안처럼 침체를 벗어나는 대응책이 절실하다.

온돌방식과 도자기가마(우측) . 츨처 두산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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