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레옹 제롬 '배심원 앞의 프리네'

▲ 장 레옹 제롬의 작품 '배심원 앞에 선 프리네'(1861·캔버스에 유채·80×128㎝) ⓒ 함부르크 미술관
▲ 장 레옹 제롬의 작품 '배심원 앞에 선 프리네'(1861·캔버스에 유채·80×128㎝) ⓒ 함부르크 미술관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꼭 죽어야만 합니까."

동상 제막식을 하듯 여인이 걸치고 있던 옷이 벗겨지자 재판정엔 일제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여인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의 동공이 커지며 자신들도 모르게 외마디 탄성을 지른다. 

'아!'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지금 '신성모독'으로 법정에 선 이 여인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기 위해 모인 배심원들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뇌는 자신의 소임을 망각한 듯 넋이 나가버렸다. 신성모독이 무슨 죄인가. 똑똑하고 말 잘하기로 유명한 소크라테스도 죽음으로 몰고 간 죄목이 아닌가. 소크라테스는 '신을 부정하고 그의 가르침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타락하게 됐다'는 이유로 아테네 정부로부터 고발당해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이 여인의 운명이 그와 같지 말라는 법은 없을 터.

눈부신 외모를 가진 이 여인의 이름은 프리네. 기원전 4세기 당대 그리스 최상급 '헤타이라'였다. 헤타이라는 고관대작을 상대하는 고급 매춘부를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춘부 등급은 미모 순으로 정해지지만, 미모 하나만으로 '상위 1%'에 들기는 어렵다.

일본의 '게이샤'도 미모와 재능뿐만 아니라 시류를 읽는 능력이 뛰어나야 최상급에 해당하는 '오이란'의 자격이 주어졌다. 상류층 남자들과 대화가 가능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철저하게 제한적이던 그리스에서 그녀는 철학토론, 향연 등 남성들만의 영역에 스스럼없이 도전해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이뤘다. 점차 '고객'이 바라던 수준에 비례해 그녀의 자존감도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맹랑하게도 자기 눈에 드는 남자를 '골라서' 상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른바 '선택받지 못한 남자'들은 질투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기도 했다. 그 중 하나였던 고관대작 에우티아니스의 상대적 박탈감은 극에 달했고, 결국 그의 질투심은 이 재판을 야기시켰다.

▲ 신성모독죄로 법정에 선 프리네가 배심원 앞에서 나체가 되자 배심원들은 그녀의 몸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다. ⓒ 함부르크 미술관
▲ 신성모독죄로 법정에 선 프리네가 배심원 앞에서 나체가 되자 배심원들은 그녀의 몸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다. ⓒ 함부르크 미술관

'내가 갖지 못 할 바에는 남도 갖지 못 하게 하겠다.'

"매춘부 주제에 비너스 여신 조각상의 모델이 되다니, 이는 성스러운 여신을 매춘부로 전락시키는 불경한 일"이라며 그녀를 신성모독으로 고발했다. 비너스 여신과 동일시 될 정도로 아름다운 바로 그 미모 덕분에 프리네는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공주가 어려움에 처하면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게 마련. 변호인을 자처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은 그녀의 애인 히페레이데스였다. 그는 재판 중 모든 논리력을 총동원해 프리네를 변호했다.

하지만 갖은 노력에도 불구, 냉담한 배심원들의 표정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유일한 희망은 배심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육감적인 알몸이 재판정에 드러나자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됐다. 그녀는 당황하는 척하며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모델이 가장 우아해 보이는 포즈로 체중을 한 쪽 다리에 실어 몸의 실루엣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더구나 부끄러운 듯 팔로 눈을 가린 그녀의 몸짓은 배심들에게 그녀의 몸을 마음껏 훔쳐볼 수 있게 만들었다. 결과는 뻔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에 의한 산물이다. 신이 창조한 절대적 아름다움 앞에 인간이 만든 법은 무효하다."

무죄방면. 프리네는 풀려났다. '아름다움은 선하다'고 한 그리스 시인 사포가 말한 대로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운 것에 선함이 깃든다'고 믿었다. 결국 법정은 '아름다움 앞에선 어떠한 논리나 법도 무시된다'는 극단적 탐미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심한 외모지상주의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 신성모독죄로 법정에 선 프리네의 나체가 드러나는 순간 이 재판의 고발자 에우티아니스는 그녀의 옷에 가려서 그녀를 볼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 함부르크 미술관
▲ 신성모독죄로 법정에 선 프리네의 나체가 드러나는 순간 이 재판의 고발자 에우티아니스는 그녀의 옷에 가려서 그녀를 볼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 함부르크 미술관

한국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이른바 '칼기 폭파 사건'. 대한항공 비행기가 1987년 11월 29일 북한 공작원에 의해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파돼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1988년 서울올림픽 안전문제를 여론화 하기 위해 공작한 반인륜적인 사건이다.

"끔찍한 테러범을 즉각 죽여라, 당장 찢어 죽여라."

한국은 언론을 비롯해 국민들 대다수가 한 목소리로 테러범을 규탄했다. 드디어 뉴스에 흉악한 테러범의 모습이 등장했고, 그 순간 사람들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비행기 계단에 모습을 드러낸 테러범 김현희는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를 한 너무나 청순하고 정숙한 모습의 한국형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격앙됐던 여론은 술렁였고, 어느새 언론의 억양이 순해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테러범을 동정하기에 이른다.

"저렇게 연약한 여자가 어떻게 혼자 그런 일을 했겠어? 시키니까 할 수 없이 했겠지."

그렇게 칼기 폭파범 김현희는 '대한민국의 프리네'가 됐다.

한국은 지금 '성형의 왕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형외과가 성업 중이다. 미인을 창조할 신의 의지는 도대체 몇 명당 한 명꼴로 보여주실 예정인 건지. 신은 왜 좀 더 자주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시지 않는 건지.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아기에게 엄마라는 존재를 보내셨다고 하던가. 지나치게 간헐적인 신의 의지 덕분에 오늘날 한국에 성형외과 의사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 건 아닌지.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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