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은 전문위원· 변호사
▲ 오지은 전문위원· 변호사

병을 고치기 위해 약을 쓰지만, 약 자체가 독이기도 한다. 어제는 치료제였지만 오늘은 부작용만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의료진은 환자를 잘 살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의사는 환자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고, 환자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의료인에게 법적인 책임이 주어진다. 필요한 답변을 위해 환자에게 필요한 설명과 질문을 하는 것, 바로 문진(問珍)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무슨 약이 필요한지, 그 약이 어떤 문제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 환자에게 해당 약물을 처방해도 될지를 판단해야 한다.

약 처방 시 과거병력이나 투약력을 묻지 않아 약 부작용으로 환자가 사망했다면 의사는 어떤 책임을 지게 될까.

최근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diclofenac) 약물에 부작용이 있던 환자가 같은 성분의 주사제를 맞은 후 심근경색과 과민성 쇼크 의증으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법원은 의사의 잘못된 처방에 대한 과실과 설명의무 위반에 관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청주지방법원 2019. 8. 19. 선고 2017가합202415판결).

환자 A씨는 과거 의사로부터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 약물에 대해 몸에 부작용이 있으니 항상 주의하라'는 말을 듣고, 'diclofenac(디클로페낙)'이라고 적힌 쪽지를 평소에 가지고 다녔다.

A씨는 2016년 11월 16일 오후 1시 30분쯤 발목을 다쳐 B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내원해 의사 C씨의 진료를 받았다. 의사 C씨는 오후 2시 26분쯤 주사약 로페낙(디클로페낙 성분의 주사제), 먹는 약 엔클로페낙정(아세클로페낙) 등을 처방했다. 간호사는 처방에 따라 주사를 놓았다.

A씨는 주사를 맞은 후 처방약을 타려고 근처 약국의 약사에게 '쪽지'를 보여주며 성분이 같은지 물었다. A씨는 약사로부터 "거의 비슷하다"는 답변을 듣자마자 "나는 이 약을 먹으면 큰일난다"며 처방전 변경을 위해 병원으로 되돌아갔다.

A씨는 같은 날 그 무렵부터 병원 응급실에서 전신경직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 디클로페낙 과민반응에 대한 약물투여와 심폐소생술 등의 처치를 받았지만 같은 날 오후 4시 11분쯤 심근경색과 과민성 쇼크 의증으로 사망했다.

법원은 의사 C씨가 환자 A씨의 과거병력과 투약력을 문진이나 기타 방법으로 파악하지 않고 디클로페낙성분의 주사제를 처방했다고 판단했다. 잘못된 처방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를 예견하고 회피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약품 처방 전에 환자측에게 약물로 인한 부작용과 합병증, 다른 치료방법이나 치료하지 않을 경우의 예후 등에 대한 설명의무를 위반한 책임을 인정했다.

특히 법원은 해당 약제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통상적인 약제라거나 환자의 사망과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매우 드물다는 사정만으로 그와 같은 주의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통상적 위험이 내재된 것으로 여겨지는 수술이나 시술이 아닌, 약물 처방에 관한 설명의무를 무겁게 인정한 판결로 볼 수 있다.

환자는 의사가 아니라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과 그 약을 먹고 실제 피해를 당하는 것은 환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의료진의 정확한 문진과 처방의 중요성을 강조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 오지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의 대표변호사) △서울대 간호대 졸업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서울대병원 외과계중환자실(SICU)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사관, 심사관 △대통령비서실 정보공개심의위원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전문위원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 이상반응 피해보상 전문위원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 전문위원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전문위원 △서울시간호사회 고문 △한국직업건강협회 고문 △대한조산협회 고문 △보건교사회 고문 △전국간호대학학생협회 고문 △대한의료법학회·한국의료법학회 회원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학술단 편집이사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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