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의 여성이 난간에 기대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몸매를 과감하게 드러낸 화려한 의상이 눈길을 끕니다.

그런데 여성의 뒤쪽으로 넓게 펼쳐진 배경에 웬 금속 구조물들이 빼곡합니다. 이 사진이 찍힌 곳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입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이 도시에서는 항구 창고에 보관돼 있던 인화성 물질 질산암모늄이 대규모로 폭발했습니다.

"원자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베이루트 시장이 울음을 터뜨렸을 정도로 상황은 끔찍했습니다.

폭발 충격에 10㎞ 거리에 있는 건물 유리창까지 박살 났고, 도시 곳곳에 피로 범벅된 시신이 널브러졌습니다.

이 여성이 마치 휴양지 같은 의상과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은 곳은 대형 참사 현장이었던 겁니다.

외신에 따르면 촬영 중이던 이들은 남녀 커플로, 폭발 이후 폐허가 된 항구를 배경 삼아 서로를 찍어주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 레바논 국기와 현지인들의 시선은 이 커플의 행동이 얼마나 황당한 것이었는지 보여주는 듯합니다.

화제의 장소에서 이른바 인증샷을 찍고, 이를 SNS에 올려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요즘 너무나 흔한 일이죠.

그러나 일부 인플루언서 등이 무리한 설정으로 사진을 찍어 올렸다가 논란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2018년 한 영국 모델이 "E.T.야, 집에 전화해"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올린 인증샷이 엄청난 비난을 받았죠.

독일의 '유대인 학살 박물관'에서 담요를 뒤집어쓴 채 유대인을 흉내 내고 E.T.에 빗대어 희화화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해골성당'으로 알려진 체코의 세들레츠 납골당은 지난해 '셀카 금지령'을 발표했습니다.

14세기 전후 흑사병과 전쟁으로 숨진 약 6만 구의 유골로 내부를 치장한 이 납골당이 온라인에서 유명세를 얻자 '인스타 성지'를 찾은 사람들이 해골에 키스하고 선글라스를 씌우는 등 망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지 않았던 거죠.

최근 국내에서는 물난리 상황에서 일부 정치인들이 '봉사활동 인증샷'을 찍어 논란이 됐는데요.

수해로 많은 주민이 고통받는 상황에 정치인들이 몰려와 이미지 관리용 기념사진을 찍고 간다는 겁니다.

2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와 5천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한 베이루트 참사 현장에서조차 사진을 찍는 사람들.

세간의 눈길을 끌 수 있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들의 '인증샷 열정'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