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돈을 벌기도 하는 시대지만, 그 돈을 벌기 위해 몸을 써야하는 사람들은 매일이 고되다. 오죽하면 '급여가 통장을 스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그 비싼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생업의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 그리고 가족들까지 모두 불편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불행은 겹쳐오기도 한다. 산재사고로 발생한 상해 치료를 받던 중 의료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산재사고로 인한 상해 치료 중 발생한 의료사고의 법적책임의 근거는 무엇일까. 대법원(2004다52576판결)은 1차 산재사고, 2차 의료사고가 환자에 대한 민사상 공동불법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견련성(관련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판례 사안은 이렇다. 망인 A씨는 B회사에서 프레스기계 작업을 하던 중 양손이 기계에 압착돼 우측 1, 2수지가 절단되는 1차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후송돼 수지절단과 접합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은 A씨에게 수액을 과다 투여한 후 환자 상태를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다. 결국 심장을 둘러싼 심낭에 삼출물이 가득차 심장이 눌려 심폐기능 장애로 사망했다. 2차 의료사고로 볼 수 있다.

▲ 오지은 전문위원· 변호사
▲ 오지은 전문위원·변호사

법원은 2차 의료사고가 전신기능이 저하된 A씨에게 수액을 투여할 때 용량을 철저히 지키고 투여후에도 제대로 관찰하고 환자 상태를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과다한 수액 투여로 부작용의 기미가 보이면 즉시 중단하거나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병원의 과실을 인정했다.

산재사고로 해를 입은 피해자가 치료를 받던 중 의사의 과실 등으로 인한 의료사고로 증상이 악화되거나, 새로운 증상이 생겨 손해가 확대된 경우가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손해와 산재사고 사이에도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산재사고와 의료사고가 각기 독립해 과실, 인과관계, 악결과발생 등 불법행위의 요건을 갖추고 있으며, 객관적으로 관련되고 공동해 위법하게 피해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이 인정될 수 있다.

두 사고 간에는 공동불법행위가 성립될 수 있다. 공동 불법행위자들이 연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통상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와 같이 피해자의 전체 손해에 대해 산재사고 가해자와 의료사고 가해자의 책임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가해자가 늘어났다고 해 모든 손해를 전보받을 수 있다거나 배상을 받는 과정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반대다.

산재사고와 의료사고는 각각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도 어렵다. 두 사고 간의 객관적 관련성까지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나 대리인 입장에서 까다로운 소송에 속한다.

산업현장, 의료현장. 이 또한 누군가에는 산업현장이다. 모두 사고와 친해져서는 안되는 곳들이다.

예방만이 최선이겠지만 불가피하게 발생한 사고에 또다른 과실이 이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만약 이미 발생한 뒤라면 그 책임을 인정받기 위해(혹은 면책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 오지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의 대표변호사) △서울대 간호대 졸업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서울대병원 외과계중환자실(SICU)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사관, 심사관 △대통령비서실 정보공개심의위원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전문위원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 이상반응 피해보상 전문위원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 전문위원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전문위원 △서울시간호사회 고문 △한국직업건강협회 고문 △대한조산협회 고문 △보건교사회 고문 △전국간호대학학생협회 고문 △대한의료법학회·한국의료법학회 회원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학술단 편집이사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