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복음이라는 초청장을 들고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분이 저렇게 했다면 부활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찾아가 그분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사람들을 아예 박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 후에도 사람들에게 초청장만 내밀었습니다.

종교적 명령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사용허가를 받지 않고, 종교권력에 중독된 추종자들로부터 대중권력을 부여 받은 가짜들이 사용하는 언행의 한 방편입니다. 이는 특히 사이비·이단 교주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하나님이 저들을 세우신 것이 아니기에 허상을 만들어 사용합니다.

저들과 달리 성령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귀결된다는 것을 아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함부로 명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이들은 복음이라는 초청장을 들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라고 사람들을 초대하며 성도를 권면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려면 그와 연회를 베푸는 사람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 기록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환대를 가장한 피의 향연으로 초대가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은 이런 변질을 싫어합니다. 복음은 명령이 담긴 일방적인 포고문이 아니라 초청장이기에 상호관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예수님은 인간의 욕망으로 가짜 복음이 난무할 것을 아시고, 성령님이 강림해서 그분이 한 말씀을 생각나게 할 터이니 이를 따르라고 했습니다(요한복음 14:26). 그런데 예수님이 내민 초청장을 가지고 '○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다 잊어라'고 슬픔에게 명령하는 청맹과니가 너무 많습니다. 인간이 겪은 고통으로 인한 슬픔도 조작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인지, 일부가 성경의 가르침을 자기 마음대로 변형해서 여전히 명령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뇌에 주어진 정보를 해석해 세상을 살아가는 편견의 동물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이런 올무를 벗어나기 위해 성경으로 그 문제를 비춰 보고 답을 주거나 언행을 결정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답을 주거나 결정을 내리는 편견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토록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를 중단하거나 스스로 했다고 자부하는 공부의 양에 만족해 정주하면 교만이 발생합니다. 교만은 시야를 흐리게 해 권면과 명령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게 하고, 명령해 놓고도 초청장을 보냈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교만은 이를 통해 자신에게 성령님의 특별한 은사가 나타났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헛된 우월감에 빠져 들게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성경공부는 하지 않고 목사가 공연하는 원맨쇼에 집중하면, 예수님의 제자보다 목사의 추종자가 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과 결합한 사이비·이단들처럼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자기에게 필요한 몇 구절만 인용해, 그것이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이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소음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성경이 말한 초청과 권면은 공감의 능력을 넓히는 것이지, 사이비·이단 교주들처럼 외고집으로 점철된 개인의 신념을 진리로 받아들이라고 추종자들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끝없이 다른 이를 초청합니다. 인류에게 성경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은혜의 저력을 믿고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합니다. 이를 거부하고 권면할 일을 명령하는 것은 빈대 한 마리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불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북향민 가운데 사이비·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성경공부를 제대로 시켜 줄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복음의 초청과 권면, 그리고 인간의 명령을 구분할 줄 아는 눈을 이들이 기를 수 있도록 조금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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