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돗 편지] 야생화를 보는 법
[아나돗 편지] 야생화를 보는 법
  • 정이신 논설위원
  • 승인 2020.04.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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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입체감을 파악할 수 있도록 고안한 원근법과 소실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원근법은 소실점의 개수에 따라 1점·2점·3점 투시도로 구분합니다. 1점 투시도는 대개 소실점이 그림 안에 있지만, 2·3투시도는 소실점이 그림 밖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양회화에서 이런 방법을 사용했던 이유는 사물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원근법으로 그린 그림은 실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원근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그림보다는 훨씬 더 입체감이 있기에, 화면에 수학적인 체계를 동원해 입체적인 그림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원리로 사용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눈에 보이는 3차원 사물처럼 평면에 있는 그림을 입체감 있게 그려내기 위해 고안해 낸 방식이 원근법과 소실점입니다.

사진이 등장하면서 이런 환경에 변화가 생겼는데, 사진을 이용해 탐욕을 즐기는 저들 때문에 엉뚱한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야생화를 감상하려면 인간이 아주 겸손해져야 합니다. 저도 지인에게 사진만 얻은 야생화가 한 그루 있는데, 꽃의 크기가 채 5cm도 되지 않습니다. 저에게 사진을 건네 준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 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려면 인간이 자기의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합니다. 그도 자세를 낮춰 이 꽃의 사진을 찍었다고 했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혹시 여러분이 만난 키 작은 야생화가 있습니까. 이들은 보는 사람이 아주 겸손해졌을 때 비로소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그런데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고성능 카메라로 무장한 채 저들 눈에 깨끗한 작품을 찍는다는 핑계로 야생화의 묵은 잎과 줄기를 떼 내거나, 물방울이 맺힌 모습을 연출하려고 마시던 생수나 자동차용 워셔액을 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벌을 부르려고 꿀을 바르기까지 합니다.

저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햇살이 있는데도 꽃은 물방울을 잔뜩 머금고 있습니다. 어딘가 맞지 않는 것 같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이 아니라 글리세린이 발라져 있습니다. 저들은 야생화에 글리세린을 발라 사진을 찍은 후 그대로 두고 떠납니다. 그러면 뒤처리는 고스란히 야생화의 몫이 됩니다.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저들의 이런 행위는 꽃의 생식과정인 꽃가루받이를 방해하는 것이기에, 야생화의 입장에서 이런 일은 번식의 존폐 문제가 달린 것입니다. 식물이 특정 색깔을 방출하거나 꽃을 가꾸는 것은 자신의 DNA를 퍼뜨리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인데, 식물의 신음소리를 담지 못한 저들의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야생화를 아예 뿌리째 뽑아 집으로 가져갑니다. 참으로 가관입니다.

야생화는 야생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야생에 핀 채 만인의 연인으로 살아가야 할 이 꽃을 뿌리째 뽑아 자신의 집에 두고 보려는 심사는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야생화의 수난이 산에서는 해마다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계절과 상관없이 일부러 눈가루와 얼음가루를 가져다 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키는 사진을 찍기 위해 야생화 주변에 있는 낙엽을 걷어내는 바람에 야생화가 얼어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낙엽은 기온이 내려갈 때 야생화에게 이불과 같은 보온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낙엽을 걷어버리면 야생화의 생육에 지장이 생깁니다. 만물이 되살아난다는 4월을 야생화에게 애달프고 혹독한 달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야생화 앞에서조차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저들은 이 꽃을 즐길 자격이 없습니다. 봄에 만개할 야생화를 위해 일본의 하이쿠(俳句) 작가 마쓰오 바쇼(松尾芭蕉)가 쓴 시를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꽃처럼 피어날 뿐이다." 모름지기 삶이 허락하는 한 꽃처럼 피어날 일입니다. 그 꽃과 더불어 사는 4월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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