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학에서 '인식의 틀'로 번역한 프레임(frame)이라는 말이 있다. 사이비·이단들이 성경에 없는 신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진 프레임 때문이다. 저들은 하나님을 인간과 같은 모습을 지닌 존재라고 주장하는데, 이때 피부색은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당시의 사고관에서 가장 근원적인 존재가 아버지라는 뜻에서 그렇게 한 것이지, 창조주가 남자와 동일한 형상을 지녔다는 뜻이 아니다.

만약 이렇게 이해하면 인간 세상에서도 남자가 주류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고 교주들은 당연히 남자들이 된다.

또 ○○교처럼 저들이 여자 신도들에게 가하는 억압은 저들의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가 된다. 이때 저들의 행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벌이는 나쁜 저항이 된다.

이런 프레임에서는 교주들의 어떤 행위도 용납된다. 교주들은 이미 완성된 존재라고 세뇌돼 있기에,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억압당하고 있으면서도 그곳이 정신적으로 갇힌 철창 안이라는 것을 모른다.

오히려 자신들의 믿음이 부족하니 사이비·이단의 기괴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굳센 믿음을 달라고 교주들에게 더 매달린다.

인간이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프레임은 이런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철저하게 이것을 거부했다. 오직 예수님만이 메시아(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했고, 이 사실을 성령님이 그분의 부활로 확증하셨다고 했다(로마서 1:4).

그러나 사이비·이단 교주들은 자신들이 완성된, 죄가 없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성경적인 근거를 대지 못한다.

비합리성이 아니라 합리성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면이 있기에 기독교의 삼위일체신론에는 항상 반발이 나타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삼위일체신론만큼이나 하나님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삼위일체신론과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다가 꼭 문제가 생겼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기독교의 삼위일체신론에서 가장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라는 선언이다. 신(神)이면 신이고 인간(人間)이면 인간이지, 인간이면서 신이고 신이면서 인간인 존재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분이라는 게 삼위일체신론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신인(神人)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의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사이비·이단 교주들처럼 인신(人神)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신 또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면서 인간이 된 존재가 그분이다.

예수님을 신인으로 보지 않고 인신으로 봤을 때, 인간 중에서 가장 빼어난 사람이 그분이라고 했을 때 기독교 역사에는 늘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예수님이 인간 중에서 가장 빼어난 분이라는 가치판단은 누가 한 것이냐'는 문제가 제기됐고, 그분을 인간 중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라고 판단한 그 가치체계로 그분과 가장 가까운 계층에 속하는 사람과 하위계층에 속하는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분 밑으로 사람들 사이에 서열이 생겼고 이는 자연스레 인종차별의 도구가 됐다.

근대 제국주의에 오염됐던 서구 신학은 백인 남자를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계층에 있는 인종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한동안 사회진화론의 첨병이 돼 세계를 누볐고, 현대의 기독교는 이때 저지른 죗값을 여전히 갚아 나가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만들어진 온갖 사이비·이단들이 이런 범죄를 다시 저지르고 있다. 궁금하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돼야 하는지.

사이비·이단 상담은 기독교가 아니면서 기독교라고 거짓으로 간판을 내건 저들의 사회적 악행을 막기 위한 사역이다.

지금도 기독교가 아닌 유사종교단체가 기독교라고 간판을 내걸고 위장한 채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데, 이는 종교사기와 관련된 것이다.

사이비·이단 상담은 종교를 떠나 사회문제가 된 종교사기를 막기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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