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이단이 주관하는 모임에서 북향민 젊은이가 회중 앞에 나와 그만의 신앙 간증을 했습니다. 그를 보고 믿음의 자손이라고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당시 그에게 믿음이라는 것이 과연 회중 앞에 나와서 말할 만큼 형성돼 있었을까요? 그의 말처럼 사이비·이단에 빠지라고 하나님이 그를 탈북시켜 주신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20∼30대는 성령님의 은혜에 이끌려 일방적으로 인도돼 가는 시기이지, 주체적으로 크리스천다운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닙니다. 태생적으로 수도자의 길을 걷도록 창조된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게다가 북향민이 그 나이에 성경에서 말한 믿음을 얻기 위해 실존적 결단을 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간증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스스로의 주인이 돼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것의 정체를 알기 위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주체적인 삶이란 주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가능한 것이기에 먼저 이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북한에서 주체라는 말을 남발해 오해가 생겼습니다만,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것은 꼭 필요합니다. 주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것으로 가는 길도 모르고 인간답게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한 유리창 안에 진열된 상품으로만 살아가게 됩니다. 상품처럼 팔리기 위해 가격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서 있는 작품으로 살기 위해 주체에 대한 탐구는 꼭 필요합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서점에 가면 수많은 인생계발서가 나와 있는데, 그런 종류의 책은 주체적인 삶에 대해 추상적인 언급을 주로 합니다. 오히려 종교에서 나름대로 검증된 주체적인 삶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더 많이 제시합니다. 이에 따르면 주체적인 삶이란 앞선 이들의 지혜에 의지해 걸었을 때, 앞선 이들의 어깨 위에서 바라봐야 가능합니다. 순간적인 처세술에 의지해서 주먹 불끈 쥐고 결심해 봤자 주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됩니다.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아야 할 관심의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주변에서 다가오는 파도의 검은 그림자에 두려움을 먼저 느끼고 포기하면 주체적으로 살기 힘듭니다. 파도의 그림자만 보고 그 너머를 보지 못하면 공부가 안 됩니다. 또 이것에 눌린 채 강제로 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닙니다. 끝까지 자신이 해야 할 공부의 대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혹시 크리스천이라면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놓치지 않아야 할 관심의 대상과 공부의 목표를 꼭 가지십시오.

자신이 평생 추구해야 할 공부의 목표가 없음을 돈과 시간 탓으로 돌리거나, 어릴 적에 집안에서 자기를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한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바보 같고 비겁한 짓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이라는 소비 동물로 생명을 유지하며 생태계의 길을 걸어온 것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빚을 졌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주변을 탓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착시의 결과물에 내가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 먹어 노추(老醜)가 되지 않고 주체적인 노인(老人)이 되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평생학습 개념도 고령화 사회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니,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공부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십시오. 기·승·전·결이 아니라 매번 기·승·전·깔때기로 끝나는 행동을 고치려면, 평생 공부할 대상을 찾아내 마음에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남자가 결혼을 하고 남편이 돼 하나님이 베푸시는 도움의 통로가 되는 여자를 배웠습니다. 안해를 통해 하나님의 예정으로 아이를 얻어 아버지가 된 후, 남자는 아이의 속도에 맞춰 기다릴 줄 아는 인내를 자신의 것으로 익혔습니다. 이게 제가 기독교 신앙인으로 공부하면서 배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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