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가르쳐 보니 초등학생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하는 일 때문에 맹목적인 신념에 오염돼 사이비·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야기를 나눠 보면 저들은 교주의 일방적 주장에 거의 함몰돼 있습니다.

기독교상담은 그들에게 올바른 성경읽기와 인문학 공부를 통해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을 타인과 더불어 바라보게 하는 눈을 틔워 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솔한 대화를 통해 그들이 보편적 인간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꿈꾸고 소망한다고 해서 모두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사이비·이단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근거도 희박한 무조건적인 낙관보다는, 중립적인 비전을 통해 난관에 대비할 줄 아는 균형 감각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합니다. 이때 '우리와 사이비·이단 교주는 모두 인간'이라는 통찰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기 좋은 소재가 기독교 인문주의입니다.

삶에는 플랜 B를 염두에 두고 일을 풀어가는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를 적용해야 할 날이 많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범위를 확률적으로 비교해 선택할 수 있는 정신적 대조 능력을 길러둬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의 막무가내식 구호가 우리 삶에 난무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래더러 토끼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 한다고 추궁하는 풍토로 내몰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을 아무런 대책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내 아이가 고래인데 토끼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 한다고 채근하면, 아이뿐만 아니라 사회의 미래까지 어두워집니다.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이를 막아야 합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기독교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내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이미 그분 안에 포함돼 있는데, 어떻게 그분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겠습니까. 제 몸 안에 있는 장기 중 일부가 몸 밖으로 튀어나와, 생명력을 지닌 채 제3의 지점에서 저를 관찰하지 않는 한, 저의 장기가 저를 입증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크리스천은 이미 하나님 안에 있기에, 크리스천이 그분을 객관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은 오류입니다. 절대 타자이지만 창조주는 상호주관적 증명에 의해 그분이 필요한 이들에게 먼저 나타나십니다.

사이비·이단들은 잘못된 인문학적 해석의 토양에 저들 사유의 물꼬를 댄 채 이를 종교적 신념으로 확장시킵니다. 우주는 서로의 관계성 속에서 모든 것이 실재하는 세계인데, 저들은 이런 사실을 도외시 한 채 절대 타자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저들만의 일방적인 해석에 몰입하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를 교주를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도 이 우주 안에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이들이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해 주는 상호주관성을 통해 기독교의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갑니다. 만약 기독교 신앙을 온전히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크리스천이 굳이 믿음을 자신의 생활을 통해 드러내지 않아도 될 것 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드러난 하나님을 알아서 믿고 따를 것입니다.

목사는 상호주관적인 존재입니다.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는 아닌데 특정인들은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목사는 이 상호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합니다. 아니면 예수님을 빙자해서 자기의 부를 축적하는 삯꾼 목자가 됩니다.

사이비·이단 교주들은 이를 거부합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절대적 타자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주 안에 있는 피조물이기에 늘 서로를 위해 성장하고 존재하며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목사와 성도의 교학상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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