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 동화돼 산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바램일지도 모른다. ⓒ 김춘만 기자
▲ 자연과 동화돼 산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바램일지도 모른다. ⓒ 김춘만 기자

습관처럼 리모컨을 입력한 채널에 맞춘다. 여러개의 케이블 채널 중 두어개가 요즘 중년에게 '핫한' 자연인 프로그램을 재방송해준다. 내용이라야 산에 올라가고, 밥해 먹고, 자연인의 인생사를 간략하게 듣는게 전부지만 보고 또 보며 부러운 눈길을 떼지 못한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생활을 해야지…"
무심코 뱉은 말에 지켜보던 아내가 한 마디 거든다.
"당신은 겁 많고 게을러서 어울리지 않아요."

꼭 틀린 말은 아니다. 가려거든 혼자 가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평생 로망으로만 그칠 가능성이 크지만 보는 순간만큼은 즐겁다.

▲ 김춘만 종합뉴스부장
▲ 김춘만 종합뉴스부장

농경생활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 이전까지는 모른 인류가 수렵채집사회였다.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자연에서 얻었다. 그렇다고 자연을 훼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일상에서 노자(老者)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자연을 이용해 생활하지만 인위적으로 가공하거나 파괴하지않는 자연과 동화된 삶이다.

문명이 일상에서 필수가 되고 세상이 온통 시멘트 덩어리로 덮힌 현대 사회에서는 어쩌면 꿈같은 이야기 인지도 모른다. 비문명인은 야만인으로 규정되고 밀림의 원주민들은 문명사회의 카메라에 발가벗기 듯 노출되는 지금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웅장하게를 향해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간다. 어느정도 만족할 만 하지만 폭주하는 문명의 기관차는 멈출 줄 모른다. 애당초 '어느정도'라는 말은 뒤쳐지는 자들의 자기변명으로 무시되고 만다.

그럴수록 인간은 만족에 결핍되고 불만은 축적되어만 간다. 새벽부터 밤까지 벌개진 눈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헷갈리고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일상의 목표가 역설적이게도 불행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부탄'이 행복지수는 1위라고 한다. 다소 의아했지만 자연인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그들은 가진 것에 대한 가치의 기준을 물량이 아닌 만족에 두고 있었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에게는 속편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 나 또한 아직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 결국은 우리가 가야 할 삶의 지향점 이기도 하다.

조금 부족하지만 그 자체로 만족하고, 풍요보다는 나눔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는 부탄인의 생활은 매우 지혜롭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인 프로그램을 보면 자기만의 왕국을 누리고 사는 느낌이다. 닭장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돼 자신이 원하는 대로 꾸미고 생활한다.

필요한 만큼만 얻고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 전기가 없으면 냉장고 대신 토굴을 파고 물이 없으면 계곡에서 끌어 쓴다. 하루 하루를 자기 의지대로 산다. 자연인이 하나같이 '근심걱정 없는 여기가 천국이다'라는 말이 과장 되이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자연인이 될 수는 없다. 이 또한 큰일날 일이다. 어차피 문명세계에 길들여진 우리는 하나의 부속품처럼 사는게 숙명 이자 도리(?)일 수 도 있다. 내가 오롯이 자연을 택할 수 없다면 스스로가 자연인으로 사는 수밖에 없다.

달빛 아래 아버지와 함께 걷던 아들이 묻는다.

"아부지 그림자가 내 그림자보다 커요." 아버지가 말한다. "근심이 크면 그림자도 큰 법 이지."
김재진 님의 시 <달빛 가난>에 나오는 구절이다.

자연인을 꿈꾸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단한 삶을 지고 온 중년들이다. 그만큼 근심의 그림자도 크고 짙다. 이쯤 해서 버리고 싶으나 어찌할 수 없는 가슴속 병 같은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평생을 안고 가서도 안 되는 것이다.

자연인으로 산다는 건 바로 근심과 걱정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이제 지금까지 지고 오던 삶의 그림자를 지워가는 연습을 하자.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너무 조급해 하지도 말고 서두르지도 말자. 한 번에 안되면 여러 번에 걸쳐 하면 된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용기 있게 버릴 줄 아는 우리도 자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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