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돗 편지] 작은 불씨 하나
[아나돗 편지] 작은 불씨 하나
  • 정이신 논설위원
  • 승인 2019.12.21 09:00
  • 댓글 0
  • +더보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온 누리에 눈이 덮이지 않아도, 조그마한 낙엽 하나를 통해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일엽지추ㆍ一葉知秋). 따라서 이때부터 겨울에 쓸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눈이 내린 후에 겨울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준비하면 늦습니다. 조그마한 사건을 보고 미리 겨울을 대비해야 합니다.

이런 징조를 보지 못했다가 큰 패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땅콩 하나가 대한민국의 대기업을 좌지우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회항시켰던 당사자는 이런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설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조그마한 일들이 개인, 가정, 기업, 나라를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꽃 한 송이 꺾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크게 보면 그것이 우주의 한 부분을 송두리째 뽑는 것과 마찬가지일 때가 있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돌멩이 하나에 우주의 한 생명이 다쳐 죽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에 돌을 던지더라도 주변을 살핀 후에 던져야 합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평소에는 구정물이 있으면 더럽다고 모두 피합니다. 그러나 불이 나면 멀리 있는 한강물 대신 옆에 있는 구정물로 불을 꺼야 합니다.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그것이 때가 되자 귀하게 쓰입니다. 이처럼 소홀히 대했던 작은 것들 중에 너무 가까이 있어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이 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그것들의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인으로 살면서 내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 가족과 교우들부터 잘 챙길 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 가족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선택은 잘못된 것이지만, 가장(家長)과 선한 이웃으로서의 책임의식은 꼭 필요합니다. 그것이 내 주변에 있는 우주의 조그마한 불씨를 살려 겨울에도 따스함을 전해 줍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이웃과 더불어 살지도 못하면서 거창하게 신앙을 핑계 삼아 우주의 시원(始原)과 종말(終末)을 논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위대한 예언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이런 메시지를 문학적인 양식을 통해 현대의 우리들이 볼 수 있도록 글로 남겼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이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바른 신앙의 잣대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사이비ㆍ이단의 창시자들처럼 혼자 대단한 것을 보고 들었다고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로 자기를 따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보고 들은 것은 아예 인정하지 않는 폭력을 저지르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하늘만 보지 않고 자기 옆에 있는 조그마한 것부터 챙길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태양에 몸은 지치고 갈증은 더해 갔습니다. 결국 둘은 모래 위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고통 뒤엔 희망이 있단다. 조금 더 힘을 내보자." 이들은 용기를 내어 서로를 격려하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얼마 후에 그들 앞에 뭔가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봤던 것은 그토록 기대했던 오아시스가 아니라 공동묘지였습니다. 아들은 절망하며 울부짖었습니다. "보세요, 아버지! 공동묘지잖아요. 우리는 이제 죽었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부드러운 어투로 아들을 달래며 말했습니다. "공동묘지가 있으니 가까운 곳에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있을 것이다."

아들은 공동묘지에서 죽음을 봤고, 아버지는 그곳 가까이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봤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사막지역에는 공동묘지 주변에 마을이 있기에, 둘이 본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숨겨진 작은 우주를 봤고 아들은 이것을 못 봤습니다. 이처럼 작은 불씨의 가치를 알아보는 시각의 차이가 사막과 같은 겨울에는 생명을 좌우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