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를 당하면 환자 측은 억울한 마음에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과 형사상 고소를 하는 방법(업무상과실치사상죄)을 생각하게 된다.

민사책임은 금전배상책임이라서 민사사건에서는 형사사건에서 요구되는 엄격한 정도의 증명이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민법상 손해배상청구가 인정되려면 피해자 측이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 피해사실(악결과),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과 악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모두 증명해야 한다.

의료사고에 관해 피해자인 환자 측이 의료진을 상대로 이러한 증명을 완벽하게 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대법원은 의료행위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서 피해자 측이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 있어서 저질러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 상 과실 있는 행위를 증명하고 그 결과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의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 의료 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증명책임을 완화하고 있다(대법원 2012. 1. 27. 선고 2009다82275 판결 참조).

▲ 오지은 전문위원·변호사
▲ 오지은 전문위원·변호사

이에 반해 의료진에 대한 형사책임은 국가의 개인에 대한 형벌권의 가동이므로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엄격한 증명이 있은 후에야 인정된다.

그렇다면 형사상 무죄가 선고된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형식상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둘 다 물을 수 있음에도, 형사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민사책임을 물을 기회조차 사라지게 된다.

대법원은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이 별개라는 입장에서 위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 했다.

의료과오로 인한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그 지도이념과 증명책임, 증명의 정도 등에서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되므로, 의료과실에 관한 형사사건에서 업무상 과실의 존재 또는 업무상 과실과 상해나 사망의 결과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확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에 관하여 무죄가 선고되거나 '혐의 없음'의 불기소 처분이 되었다고 하여, 그러한 사정만으로 민사책임이 부정되지는 아니한다(대법원 2015. 3. 12. 선고 2012다117492 판결 등 참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료사고를 당하였다면 형사고소 후 그 결과에 상관없이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설사 형사고소 결과 불기소처분 내지 무죄선고가 되었다 하더라도 민사책임은 그 증명에 최선을 다하여 승소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제껏 수많은 의료사고를 보았지만 동일한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사건 별로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을 동시에 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전략적으로 어느 하나를 먼저 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의료사고를 당한 입장에서 억울한 마음에 형사고소와 민사상 소제기를 떠올리는 마음이 십분 이해되지만,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그 증명책임과 증명의 정도 등이 다르기 때문에 해당 사건에 관한 의무기록을 바탕으로 전문가와 상의한 후 어떠한 전략으로 해결할 것인지 사전에 고려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그 사고를 딛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오지은 변호사 △서울대 간호대 졸업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서울대병원 외과계중환자실(SICU)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심사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사관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 이상반응 피해보상 전문위원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 전문가 자문위원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전문가 위원 △서울시간호사회 고문 △한국직업건강협회 고문 △대한조산협회 고문 △전국간호대학학생협회 고문 △대한의료법학회·한국의료법학회 회원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학술단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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