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 손해 현실화된 것을 인지일로부터 제기
손해·가해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 있는날부터 10년간 가능

얼마 전 아이가 유치원 버스로 등원하던 중 가벼운 접촉사고를 당했다. 어른과 달리 아이가 자신이 느끼는 통증이나 증상 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난감해 한다. 성장과정 중에 사고를 당한 것이라 그로 인한 후유증 등이 나타나는 것인지, 그렇다면 언제부터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어 부모는 마음 졸이며 지켜볼 뿐이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혹은 불법행위 있는 날로부터 10년간 제기할 수 있다(민법 제766조). 그리고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나 '불법행위 있은 날로부터 10년'이라는 시효 가운데 하나라도 지나게 되면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한다.

피해자가 아이라면 손해를 확인한 후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시점에 있어서 어른보다 늦춰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법적으로는 무한정 기다려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만약 피해자가 유아라면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성장과정 도중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럴 때에도 어른과 동일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해 최근 대법원은 피해자의 나이가 어릴 경우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청구에 있어서 그 기산점이 '손해가 현실화된 것을 안 날'이라고(대법원 2019. 7. 25.선고 2016다1687 판결)했다.

원고는 2006년쯤(15개월 무렵) 사고를 당했다. 2개월가량 지난 후 '편마비, 뇌 손상, 뇌출혈' 등의 진단을 받았으며, 원고의 의사는 향후 치료 의견으로 "향후 지속적인 신경 발달 치료와 합병증, 간질 등의 집중 관찰을 요합니다"라고 기재했다.

원고는 이후 약간의 발달지체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계속 치료를 받아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였으나, 2007년경부터 경련 등의 증상이 발생했으며 이후 발달단계가 현저히 퇴행하는 양상을 보였다.

원고는 2011년쯤(6세) '편마비, 편평족, 언어장애, 실어증, 간질'등의 장애진단을 받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후 2014년경 '치매, 주요 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

대법원은 이 사건 사고 직후에는 언어장애나 실어증, 치매, 주요 인지장애로 인한 손해가 현실화됐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원고나 원고의 법정대리인으로서도 사고 시점인 15개월 무렵에는 혹시라도 장차 상태가 악화되면 원고에게 어떠한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할 수 있을 뿐, 뇌 손상으로 인해 발생할 장애 종류나 정도는 물론 장애가 발생할지 여부에 대해서조차 확실하게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현실적인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의 경우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안 날은 단지 관념적이고 부동적인 상태에서 잠재하고 있던 손해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러한 손해가 현실화된 것을 안 날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원고처럼 신체에 대한 가해행위 후 상당 기간 동안 치료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증상이 발현돼 그로 인한 손해가 현실화된 경우, 특히 가해행위가 있을 당시 피해자의

나이가 왕성하게 발육·성장에 따라 호전 가능성이 매우 크거나, 치매나 인지장애 등과 같이 증상의 발현 양상이나 진단 방법 등으로 보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등의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피해자가 담당 의사의 최종 진단이나 법원의 감정 결과가 나오기 전에 손해가 현실화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법원이 인정하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오지은 전문위원·변호사
▲ 오지은 전문위원·변호사

소멸시효 제도는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사실 상태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된 경우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으로 주된 목적은 법적 안정성이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에만 집중하는 경우 구체적 정의는 외면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가 사고를 당한 사실만으로도 부모의 마음은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 것은 누구보다도 부모일 것이다. 결국 아이에게 장애가 남은 것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 부모에게 인간적인 위로는 이미 힘이 될 수 없고, 최소한 법적인 피해 구제방법은 가능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러한 지극히 상식적인 정의를 뒤늦게라도 대법원이 확인해 준 점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 오지은 변호사(법무법인 서호) △서울대 간호대 졸업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서울대병원 외과계중환자실(SICU)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심사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사관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 이상반응 피해보상 전문위원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 전문가(자문)위원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전문가 위원 △서울시간호사회 고문 △한국직업건강협회 고문 △대한의료법학회·한국의료법학회 회원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학술단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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