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에서 종교를 구성하는 3가지 요소로 언급하는 것은 창시자, 회중, 경전이다. 창시자와 그를 따르는 회중은 종교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지만, 경전이 왜 들어가야 하는 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안전한 종교 혹은 보편종교와 유사종교를 구분하는 데 아주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필자가 광화문광장에 나가 '내가 곧 ○○'라고 외치면서 '사명자인 나를 믿으라'는 식의 어떤 종교를 창시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최소한 필자와 같이 이런 일을 벌인 몇 사람의 회중은 만들어 질 것이다. 이때 필자의 고유 주장을 담은 경전이 같이 있어야 한다. 다른 종교의 경전에 있는 글을 표절해 내가 쓴 글이라고 우기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이기에 반드시 필자의 고유 주장이 담긴 경전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라는 이름은 붙이고 있지만 전혀 종교가 아닌 것이 된다. 맹자(孟子)의 표현대로 사이비(似而非)가 된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세계의 안전은 중독(中毒)과 연관돼 나타난다. 요즘 많이 언급되는 미디어 중독이나 스마트폰 중독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안전과 연결된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모르거나 일부러 모른 체 한다.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이익이 더 중요하기에 잘 보이지 않는 안전을 이것을 얻기 위해 뒷전으로 밀어둔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호모 렐리기우스(Homo Religius), 인간은 종교적 동물이다. 안전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종교의 안전' 혹은 '종교적 안전'에 대한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다. '종교에도 안전이 있는가'라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종교도 안전하지 않은 것이 있다. 유사종교이면서 보편종교인 체 위장해 사람들을 위험한 길로 끌어들이는 부류가 있다. 앞으로 그들이 퍼뜨리고 있는 종교중독의 악성종양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말해 보려 한다.

종교적인 안전을 위해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이 경전(經典)이다. 어떤 종교가 보편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반 사람은 경전의 유무를 통해 그것이 위험한 유사종교인지, 나름대로 괜찮은 보편종교인지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책의 종교인 기독교라고 표방하면서도 성경을 거부하는 곳이 있다. 저들은 새로운 시대가 됐다면서 저들이 추앙하는 교주의 말을 성경보다 더 우선시한다.

이러면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 안에도 다양한 분파가 있지만, 이 다양한 분파에서도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토대가 성경이다. 그러나 저들은 겉으로만 기독교인 체 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성경에 언급된 적이 없는 저들만의 프로그램과 교주 지시사항을 성경보다 더 우위에 둔다. 그리고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도록 사람들을 특정 교리와 경험으로 세뇌시킨다.

종교가 폭력을 수행하는 무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정당하게 방어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경우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종교적인 가치에 투영해 상대방을 노예 사냥하듯 세뇌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면 사회 문제가 된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를 핑계 삼아 유사종교가 보편종교인 척하며 사람들을 중독과 세뇌시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근절해야 할 정신적 파괴 행위이다.

한 때 마르크시즘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적이 있다. 이 신념이 인간 사회에 진정한 해방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였다. 이처럼 오늘도 잘못된 지구 종말론을 주장하는 유사종교 중독자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고치기보다 사람들을 그곳으로 끄집어 들여 세력을 확장하는데 몰두한다. 문제는 확증편향에 취해 저들이 가진 신념이 틀렸는데도 그것을 반성하지 않는 유사종교중독의 피해자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유사종교로 인한 중독에도 공익적 차원에서의 관심과 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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