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를 운영하다 보니 짧은 시간에 학교 성적을 올려주겠다는 사람들에게 현혹된 부모들과의 갈등은 이제 거의 일상사가 됐습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실력이 엉망이 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예전에 겪었던 일입니다. 초등학생 4명에게 독서·논술·한문·한국사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아이가 영재프로그램에 합격해서 그 프로그램에 등록했었습니다. 다른 엄마가 놀라서 자기 아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어보려고 저에게 전화를 했었습니다. 그 엄마가 계속 돌려서 말을 하고 있기에 제가 물었습니다. "영재성이 뭐에요. 언제까지 발현돼야 영재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에요?"

초등학교 때 남달리 머리가 좋았다는 아이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듣고 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공부를 잘하거나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초등학교 때는 안 그랬는데…'라며 망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습니다. 초등학교 때 머리가 좋았다는 판단 기준으로 자주 이용되는 '암기력의 영재'는 우리 주변에 많지만, '삶의 영재'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종합판단을 해야 합니다. 이때 암기력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아이가 종합판단능력에서도 그런 재능을 보이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예를 들어 암기력의 영재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삶에서 발생하는 온갖 갈등을 잘 풀어낸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해야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자신의 진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에 암기력의 영재성은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한 인간의 천재성은 대개 5∼6세 이전에 결정됩니다. 5∼6세 이후에는 종합판단능력을 갖추게 하는 문해력(文解力) 또는 문식성(文識性) 훈련이 더 필요합니다. 특출한 암기력이나 IQ수치가 높은 것을 가지고 자기 아이가 대단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순간부터 아이의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사설학원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봤었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가 너무도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본 것이지만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너지고 있다고 해서 공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공교육이 그나마 이 사회에서 모든 이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최상의 에스컬레이터 기능을 하고 있기에,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곧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오래된 미래를 포기하는 일로 연결됩니다.

저희는 지금도 소규모의 대안학교를 운영합니다. 크고 대단한 것은 아니고 조그맣게 <인문학콘서트(국어·독서·논술)>에 해당하는 과목들을 가르칩니다.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지속적인 발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독서와 글쓰기이기에, 이것만큼은 꼭 가르쳐야겠다 싶어서 여전히 이를 위한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운영하는 대안학교에서 강조하는 수업은 문해력(문식성)을 기르기 위한 수업입니다. 인간의 뇌는 본래 산만하고 다른 동물에 비해 늦게 자랍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이를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뇌가 빠르게 퇴화합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와 같은 시각 매체를 통해서만 정보를 흡수하면 뇌 건강이 안 좋아집니다.

공교육이 완전히 무너져 우리가 이것을 포기했을 때, 누가 더 손해를 보게 될까요. 저와 같은 서민들일까, 상류층 자제들일까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현실이기에 공교육을 바로 세우려면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합니다. 속성으로 재배됐다 갑자기 시드는 암기력의 영재성을 찾지 말고 지속적으로 발현될 문해력(문식성)에 더 관심을 갖고 아이들을 키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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