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사람 조선 것으로'
얼핏 봐도 아주 오래전 대중을 계몽하는 문구로 보았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1920년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발기하고 1923년 서울에서 발족한 '조선 물산 장려운동'의 표어다.
이 운동은 비록 생산력이 뒷받침되지 못했고 일부상인의 폭리로 큰 성과를 보지는 못했으나 밀려드는 일본 상품에 대한 국산품 보호운동이라는 큰 족적을 남겼다.
그로부터 100여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신 물산 장려운동'이 전국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다. 단순히 일본제품 불매를 넘어 국산 대체재까지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무명옷과 일부 토산품 등 빈약한 국산품으로 대응하던 과거와는 달리 거의 전 산업분야에서 일본과 대등한 대체재나 보완재가 발굴되고 있다. 우리도 몰랐던 우리상품의 우수성까지 실감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지난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에칭가스를 비롯해 반도체제조에 필수적인 소재 3가지에 대해 한국 수출을 규제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를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판결 등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을 천명했다.
엄밀히 말하면 '보복'이라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저들에게 보복을 살만한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복'은 '규제'로 순화하는 것이 맞겠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미국의 정책에 따라 소위 '원시 국가'로 후퇴할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1950년 1월 12일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이 격화되자 애치슨라인에 일본을 편입시키고 공산세력의 남하를 막는데 일본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공교롭게(?)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은 그야말로 기사회생한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이웃나라의 피값을 그들은 천운(天運)이라며 하늘에 감사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일본에 대응할 카드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일본 경제의 숨통을 쥐고 흔들 만한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불고 있는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짠한 가슴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언제나 위정자들이 그르치거나 놓친 부분들을 국민들이 메우고 있다. 멀리 조선 물산 장려운동이 그랬고 IMF시절 금모으기 운동이 그랬고 요즘 일본상품 불매운동도 그렇다.
혹자들은 일본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처가 감정적으로 치우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감정적 대응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이 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당하고 양보만 해야 한다는 것인가, 배려는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뒤바뀐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나약함에 다름 아니다.
이번 사태만 봐도 일본은 우리의 영원한 이웃이나 우방이 되기에는 미덥지 못한 부분이 많다. 다소 늦었지만 기술과 경제구조의 체질을 과감하게 개선하고 일본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필요하다면 일치된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경제적 손익계산으로만 따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작금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유, 불리를 넘어 우리의 자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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