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 말의 홍수에 떠다니는 시대
[한강로] 말의 홍수에 떠다니는 시대
  • 김춘만 종합뉴스부장
  • 승인 2019.06.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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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아름다움은 강요없이 자신을 보여주는데 있다. ⓒ 김춘만 기자
▲ 진정한 아름다움은 강요없이 자신을 보여주는데 있다. ⓒ 김춘만 기자

"내 고향마을은 너무나 가난해서 보여줄 것은 노을밖에 없네."

어느 봄 날 운전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말에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마침 해넘이가 시작되는 초저녁 붉은 노을이 차창으로 스며들어 감흥은 더욱 컸다. 어떤 수많은 미사여구와 수식어로도 이처럼 간결하고 담백하게 고향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을게다.

프랑스 헨리3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시구를 읊어주고 싶었다. 수많은 시인에게 작품을 부탁했지만 대부분 화려한 레토릭(rhetoric)으로 장식된 거창한 시를 보내왔다. 그러나 필립 데스포르테 시인은 단 세 줄짜리 시로 헨리 3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이름이 없어도, 명예가 없어도/난 그렇게 태어나도 좋습니다

감동한 헨리3세는 이 시인에게 330만달러의 큰 상금을 내놓았다. 아마도 3줄의 감동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멀리 프랑스까지 갈 것도 없다. 고교시절에 배운 유치환 님의 <그리움>이라는 시를 보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날 어쩌란 말이냐

임에 대한 그리움을 백 마디 천 마디 나열하는 것보다 마음 깊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말'이 난무하고 정보인플레에 시달리는 이 시대에 우리의 머리는 쉴 틈이 없다. 미디어를 통해 매일같이 쏟아지는 수많은 말들이 우리를 더욱 피곤하게 한다. 애써 멀리하려 해도 미디어가 그물처럼 감싸고 있어 그마저 여의치가 않다.

정보의 소비자인 우리는 선택권이 없다. 피할 수도 없다. 막강한 미디어의 힘에 우리는 무방비로 열려있다. 정제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달된다. 결핍보다 무서운 과도함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 사람들은 말의 홍수 속에 허우적댄다.

예수와 석가모니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동안 단 한마디도 안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경전하나 던져주고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경전에는 설명이 없다. 기준만 제시하고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한다. 그것이 수천년을 지탱한 힘이다. 만약 두 분이 2000년동안 사람들의 삶에 간섭하고 나섰다면 아마도 두 종교는 벌써 없어졌을 것이다.
말없이 지켜보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신자들은 큰 힘과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강아지가 인간의 가장 오랜 반려동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재롱도 한 몫 했겠지만 강아지는 보호자가 어떤 행위를 하든 어떤 감정을 보이든 말이 없다.
그저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다. 만약 강아지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주인과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가장 큰 반려동물의 위상도 다른 동물에게 양보했을 것이다.

세치 혀가 내뱉는 말은 참으로 무서운 흉기다. 몸에 난 찰과상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지만 말로 인한 상처는 영원한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말실수는 불필요한 말 속에서 나타난다. 말이 많은 사람이 실수도 많은 법이다.

비단 입으로 나오는 말만 위험한 게 아니다. 요즘은 손가락 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얼굴을 맞대고 하는 말 보다 더 큰 오해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도 있다. SNS에서의 대화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하는 이유다.

말은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판단케 하는 것이다. 굳이 장황하거나 억지논리를 끼워 맞출 필요도 없다. 말은 정제되고 정보는 팩트만 전해주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듣는 사람 몫이다. 생각보다 상대방의 수준이 높음을 우리는 자주 간과하고 있다.

세상은 온갖 기능들이 메커니즘적으로 얽혀 굴러가고 있다. 그 중에 말과 정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때로는 우리들 삶의 가치를 외곡하고 잘못된 사고의 프레임에 가두기도 한다. 요즘처럼 막말이 일상화되고 미디어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깨어있는 시민들의 견제와 감시가 더욱 필요하다.

삼사일언(三思一言)하라는 공자님 말씀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말은 곧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는 증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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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만이 2019-06-27 20:41:29
종교이 자유 서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122hm122 2019-06-27 19:54:33
공감가는 글 입니다.

박은경 2019-06-27 17:40:45
심사일언 명심하겠습니다.

남산타워 2019-06-27 15:08:52
한 우물에서 쓴 물과 단 물이 어찌 나오겠는가!?
한 입에서 나오는 말도 마찬가지~

정이신 2019-06-27 09:20:52
말뿐만 아니라 글도 너무 가볍습니다. 말과 글이 제 자리를 잡아줘야 사회가 잘 안 흔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