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용을 주택용으로 '불법사용' 허다
바닥에 깔린 전선 농어민·어린이 위협
농어민 현실 맞는 전기안전 교육 시급

▲ 경기 여주시 점동면의 전주에 무려 4대의 양수기가 사용되고 있다. ⓒ 서경원 기자
▲ 경기 여주시 점동면의 전주에 무려 4대의 양수기가 사용되고 있다. ⓒ 서경원 기자

농사용 전기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 부실한 관리로 농어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세이프타임즈가 기획시리즈로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민 안전'에 무방비로 노출된 농사용 전기의 사용실태를 집중점검했다. 취재팀은 25일 경기 여주·일산 등 2곳과 충북 청주 1곳, 강원 원주 1곳 등 4곳의 농지를 방문했다.

본격적인 농번기에 진입하면서 가뭄이 기습했다. 농민들은 논, 밭, 하우스 등에 물을 대기 위해 쉴새 없이 전기모터를 돌렸다.

농어촌공사의 2017년 '수리시설별 수리답면적 통계'를 보면 저수지, 양배수장 등에 안정적인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수리답 면적은 70만7000㏊. 농업용수는 저수지 61.1%(43만2000㏊), 관정은 4.5%(3만200㏊)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관정의 대부분은 전기모터를 돌려 물을 끌어 올린다. 이때 주로 사용되는 것이 농사용 전기다. 한국전력은 △주택 △일반 △산업 △교육 △농사 △가로등 △심야용 등으로 나누어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농사용 전기는 △양곡생산 △배수펌프 조작과 수문조작 △육묘와 건조 △축산·수산물·양잠·수산물 양식업 등에 사용된다.

이 전기는 다시 농사용 갑·을로 구분된다. 갑은 관정, 을은 농작물 재배·건조·냉동 등에 사용된다. 농사용은 주택용 전기에 비해 요금이 40% 저렴하다. 영세 농어민 경쟁력 확보와 농수산물 가격안정을 위해 일반요금보다 낮게 책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전기가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이프타임즈가 실태를 파악한 결과, 일부 농가는 컨테이너나 농막 등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주 분전함에 붙어 있는 농사용 표시가 무색할 정도였다. 심지어 주택의 난방용이나 생활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발견됐다.

▲ 농업용 전기를 비닐하우스에 공급하는 배전반(왼쪽)과 논농사 용수를 공급하는 배전반. ⓒ 김덕호·서경원 기자
▲ 농업용 전기를 비닐하우스에 공급하는 배전반(왼쪽)과 논농사 용수를 공급하는 배전반. ⓒ 김덕호·서경원 기자

농어민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었다. 전기 사용에 필요한 시설을 전문 전기공사업체가 해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농민이 전기를 연결해 사용하고 있었다.

경기 고양 일산의 한 비닐하우스촌에는 분전함에서 연결된 전선이 흙바닥에 방치돼 있었다.

김모(56)씨는 "전선이 바닥에 깔려 있어 날카로운 것과 접촉한다면 외피가 상해 위험할 것 같다"며 "분전함도 열려 있어 비가 내리면 누전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여주지역의 한 농지는 전주 한 곳 분전함에 전기모터 양수기가 무려 4개나 연결돼 있었다. 콘센트 역시 노출돼 누전, 감전, 정전 위험이 있었다.

허술한 농사용 전기 시설의 관리는 농촌에서 야외할동을 하는 어린이들에게도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있었다.

"공기가 좋아 아이들과 야외로 자주 놀러 나온다"는 이모(52)씨는 "아이들이 전선을 가지고 장난칠까 봐 아찔하다"고 말했다. 공기좋은 농촌이 안전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은 셈이다.

농사용 전기가 안전의 사각지대가 된데다 혈세까지 새고 있었다. 농민을 위해 저렴하게 공급된 전기가 주택용으로 버젓이 쓰이고 있었다. 한 주민은 "많이 쓰더라도 점검원에게만 걸리지 않으면 저렴하게 전기를 쓸 수 있다"고 털어놨다.

충북 청주 청원구의 한 곳은 '농사용 전기'라고 쓰여진 분전함의 전기가 콘테이너 안으로 버젓이 연결돼 있다. 양수작업을 위해 바닥에 끌어다 놓은 전선의 콘센트 부분을 플라스틱병으로 덮어 놓아 위험천만했다.

산책을 하던 이모(37)씨는 "농사용 전기를 콘테이너에서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 아니냐"며 "세금이 줄줄 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원 원주지역의 안전실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부 분전함은 계량기조차 없었다. 이미 전기 공급이 중단됐지만 안전조치 없이 테이프로 임시조치만 해 놓은 상태였다.

한전 관계자는 "본부별로 농사용 전기 불법사용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며 "불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농사용 전기시설 전기 코드를 페트병(왼쪽)으로 덮어 놓거나, 모터 주변에 잡초(가운데)가 무성한 것은 물론 전기가 중단된 채 방치된 경우가 많아 안전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 서동명 기자
▲ 농사용 전기시설 전기 코드를 페트병(왼쪽)으로 덮어 놓거나, 모터 주변에 잡초(가운데)가 무성한 것은 물론 전기가 중단된 채 방치된 경우가 많아 안전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 서동명 기자

한국전기안전공사가 2018년 6월 '농사용 전기설비 재해예방점검' 통계에서도 불법사용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농사용 전기설비 29만9720호를 점검한 결과 부적합률이 1.54%(4645호)로 드러났다. 누전차단기 86%(3999호), 절연저항 5.8%(271호), 개폐기차단기 3.5%(165호) 등의 부적합률이 95.3%를 차지했다.

대구·경북 1082호(23.3%), 광주·전남 833호(17.9%), 대전·충남 722호(15.5%), 전북 551호(11.9%) 등이 무려 68.6%를 차지해 농업 인구가 밀집한 곳에 불법이 집중됐다.

전기안전공사 관계자는 "노출된 환경과 잦은 동작으로 손상된 누전 차단기에 대한 개선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업체 교육과 안내책자 배포를 통해 예방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은 올해 1·4분기 연결손익계산서를 통해 6299억원의 적자를 냈다고 공시했다. 2018년 통계를 보면 2350만2000호 가운데 농사용 전기 사용은 184만9000호로 7.8%를 차지했다.

판매수입은 57조2174억원으로 이 가운데 농사용 전기가 8776억원으로 1.5%를 차지하고 있다. 농사용 전기요금은 평균 1kWh당 108.75원에 달한다. 농업용은 1kWh당 47.43원으로 판매의 44%에 달한다. 농사용 전기가 한전의 수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기공사업체 관계자는 "농번기가 아닌 겨울에 전기요금이 발생할 경우 한전에서 확인을 한다"며 "불법이기에 이들 시설 대부분은 전문가가 아닌 농민들이 전기를 연결해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안전의 사각지대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공사 전문업체들은 분전함까지만 시공하고 양수기 연결은 농민이 직접하는 형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양수기 모터와 전주가 멀 경우 전선을 논둑 등으로 길게 깔아 연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누전 등 사고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일부 농가는 규격이 아닌 저렴한 비규격 전선을 연결해 사용하기도 한다. 트랙터·경운기 등 농기계가 지나 갈 경우 압착 등으로 합선이 될 수 있다.

논·밭 등의 제초작업 때 전선을 자를 수 있어 감전사고도 발생한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 누전 차단기를 내려 놓고 코드도 뽑지 않고 있었다.

전기안전공사가 조사한 2017년 감전사고를 보면 사상자 532명 가운데 19명이 사망했다. 반면 전기공사때는 사상자 235명, 사망자는 4명에 불과했다. 시공후 사용과정에서 사고가 더 많이 발생했다.

농민 고령화에 따른 전기안전에 대한 상식 부족으로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농사용 전기의 불법 사용에 대한 감독과 전기안전교육이 시급하다.

▲ 경기 고양시 한 농가 분전반에서 나오는 전기 리드선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 김덕호 기자
▲ 경기 고양시 한 농가 분전반에서 나오는 전기 리드선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 김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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