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돗공동체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이고, 공부를 통해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바꾸는 것을 설립 목표로 하고 있는 아나돗학교의 선생인 간사입니다. 목사이면서 간사이기에 늘 두 가지의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학생들에게 비쳐집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은 하나이고,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로 하나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 빚을 진 사람이기에 제가 진 빚을 갚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거나 일을 할 때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얼마만큼 확장시킬 수 있는가를 따집니다.

더불어 부족한 저를 깨우쳐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이런 만남의 인연과 일을 허락하신 것이라고 여깁니다.

기원전 구약시대에 아모스 선지자가 말했던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물처럼,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는 나라를 꿈꿨습니다(아모스서 5:24).

얼마나 좋습니까, 이런 나라. 대학생때 성경에서 이 구절을 읽고 온 몸이 떨리는 전율을 경험했었습니다. 그 전율로 경험한 하나님 나라가 저의 첫사랑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청소년지도사로 일하면서는 이런 나라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꿈꿨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여전히 주어진 삶의 경로를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 저의 첫사랑이 확장돼 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해관계를 떠나 확장되는 그분의 나라를 보고 있습니다.

촐랑촐랑 파도처럼 움직이는 염량세태(炎凉世態)형 인간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해저(海底)에서 묵직하고 크게 움직이고 계시는 그분의 나라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제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 나라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습니다.

이 나라를 통해 세계 경제가 무한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네킹 환상(mannequin vision)을 버리게 됐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없는 욕망일 뿐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걸 버려야 경제를 보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경제의 핵심 사안이 달리 보입니다.

무역에서 중요한 것은 수출이 아니라 자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한 수입임을 알게 되고, 우리나라 경제에서 성장만큼이나 분배가 왜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너와 나를 필요 이상으로 저울질해 평가하는 경쟁력 비교가 숫자놀음에 불과한 허구라는 것을 가늠해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나라를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면 한국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앙을 빙자한 맘몬(mammon)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이미 한국교회는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숙성을 위한 부흥이 필요한 때입니다'라는 말이 궤변으로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이 나라의 눈으로 보면 북한이 쉽게 무너질 것이라는 착각과 계속 저렇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쓸모없는 아집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 평화로운 한반도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내가 걸어야 할 길을 걸을 수 있게 됩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정치권력에 대해 불필요한 감성적 접근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 세상을 혼자 살고 있다는, 살아갈 수 있다는 과대망상을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옆 사람과 같이 비를 맞고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북향민의 경우 북한의 고향에 두고 온 이들을 그리워하다 옆에 있는 남한 친구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서럽게도, 아주 슬프게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외계에서 온 괴물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어떤 대우를 받을지라도 아름다운 꿈이 서린 첫사랑을 버린 채 우리 아이들이 주인공인 5월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와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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