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어드의 얼음 창고' 혹은 '슈어드의 바보짓'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윌리엄 헨리 슈어드는 1867년 미국의 국무장관이었으며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는 알래스카의 무한한 가치를 알아보고 미래세대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미국인들의 반대여론과 의회의 비준반대에 괴로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알래스카는 얼음과 눈만 가득한 쓸모없는 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언론은 '슈어드를 위한 얼음 창고'라는 별명을 알래스카에 붙이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해댔다. 미국이 나중에 세계 초강대국이 되려고 그랬는지 가까스로 의회에서 비준이 되었고 알래스카는 결국 미국의 땅이 된다.

( 물론, 남하정책을 추진하다가 오스만 투르크와 영국,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대패한 러시아의 재정파탄도 알래스카 매각을 서두르게 만들었지만 슈어드의 결단과 호소가 없었다면 불가했을 것이다. )

'슈어드의 얼음 창고' 혹은 '슈어드의 바보짓'이라는 말은 1867년에는 한 인간을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기 위해 쓰였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게 사용되어지고 있다. 즉,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지혜로운 행동으로 후대에는 진정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을 일컫는 것으로 미국에서는 널리 쓰이고 있다.

생각해본다. 우리 오천년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슈어드 같은 인물이 없었는가. 미래를 내다보고 후손을 생각하며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았던 훌륭한 인재가 없었는가. 찾아보니 수없이 많다.

▲  안상현 칼럼니스트
▲ 안상현 칼럼니스트

<유재론>을 통해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해야 함을 설파했던 허균, 병조판서로 재직 시 선조에게 '시무 6조'를 올려 10만의 군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율곡 이이, 청의 실체를 인정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며 서양의 과학기술을 접목시켜야만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음을 깨달았던 비운의 소현세자 등등...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았으나 위로부터의 동의와 아래로부터의 지지를 받지 못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씁쓸히 떠나가야 했던 이들은 얼마나 많으며 또 그로 인해 우리 역사는 얼마나 오랫동안 비참하였던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인으로 분석해본다.

첫째, 개척정신과 개혁정신을 가지고 대서양을 건너 온 이민자들의 후손이어서 그런지 긍정의 힘이 유달리 강하다. 둘째, 토론과 상호 합의의 과정이 일상화되어 있으므로 일방적인 지시와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셋째, 다원주의로 인하여 통합이 어려울 것 같지만 옳은 결과가 주어지면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깨끗이 승복하고 지지를 보낼 줄 아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슈어드의 고견을 듣고 허가할 수 있는 이가 왕 한명 뿐이었다면 황금의 땅 알래스카는 여전히 얼음 땅에 불과하였을 것이나 의회에 보고하고 비준을 받는 절차가 미국에게는 있었기에 당시 일부의 지지라도 확보할 수 있었다.

실제로 영국 내각은 당시 줄기차게 빅토리아 여왕에게 전쟁 배상금의 일부로 알래스카를 차지해야 함을 설득하였으나, 남편을 잃은 지 얼마 안 되어 우울증과 무기력함에 사로잡혀 있던 여왕은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빅토리아의 갱년기'로 부르기도 한다.

오늘도 도처(到處)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신을 펼치고 있는 한국의 슈어드들이많다. 주위에 슈어드가 있다면 비난과 조롱 대신에 격려와 지지를 표해주자. 혹 자신이 슈어드라고 자각된다면 의기소침하지 말고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더욱 더 당당해지자. '슈어드의 바보짓'이 모이고 또 모여야만 역사는 발전하고 인류사회는 진보하는 법이다.

■ 안상현·자유기고가 = 범죄예방 자원봉사자. 법무부 법사랑위원 전주지역연합회 청소년보호분과 위원으로서 시간 날 때마다 청소년 선도와 범죄예방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다.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맑은 의식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더 큰 뜻을 두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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