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봤던 해외토픽 뉴스에 남의 고민을 대신해 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가 고민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말하고, 그 사람은 말한 이의 고민을 대신해 준다고 했습니다. 고민만 대신 할 뿐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닌데 이게 어떻게 직업이 되는지 궁금했지만, 당시에 꽤 성업 중이라는 뉴스를 봤었습니다.

그때 그 뉴스처럼 슬픔에도 일정한 공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이렇게 슬퍼하면 슬픔은 끝이라고,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거나 풀어 낼 수 있는 표현방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조선시대에 곡비(哭婢)를 썼던 것처럼 제가 힘들 때 대신 슬퍼해 줄 사람들을 구할 수도 있고, 나름대로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군대에 갔을 때 군화 끈을 매는 사람이 군화 끈을 풀고 있는 사람보다 낫지 못했습니다. 대개 군화 끈을 바짝 매고 있어야 하는 이들은 졸병입니다.

그런데 군복무를 마친 후에 보니 때로 군대처럼 삶의 끈을 불끈 잡아 당겨야 하는 이가 삶의 흔적을 마무리한 사람보다 더 낫지 못해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영 마땅치 않지만 슬픔은 늘 남겨진 이들의 몫입니다. 죽은 이들은 말이 없기에 슬프냐고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내 자신도 다 알 수 없는데, 굳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삶의 시계를 돌리기 위한 태엽을 감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모르는 것에 집착하기 보다는 아는 것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슬픔에 관해서는 이 말이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에 겨워 그렇게 많이 울어댔지만 아직도 여전히 슬픔을 알 수 없습니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5명의 젊은이들이 신혼여행도 포기한 채 에콰도르 선교에 나섰다가 순교당한 사건이 있습니다. 5명의 선교사들은 아내들을 후방에 남겨둔 채 경비행기를 타고 단 1명의 크리스천도 없는 아우카 인디언 마을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흥분한 인디언들이 몰려오고 있다. 기도해 달라'는 마지막 무선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고, 이튿날 구조대원과 가족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5명의 선교사들이 이미 죽어서 싸늘한 시신이 돼 있었습니다.

20대의 선교사 부인들은 울부짖으며 '남편들이 이루지 못한 과업을 우리가 완수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아내들은 모두 아우카 마을로 이사해 복음을 전했고, 그 후 약 50여년 만에 그 마을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선교사들을 살해한 5명의 인디언들 중 4명이 목사가 됐고, 1000여명의 주민들이 모두 크리스천으로 변했습니다. 피트 선교사의 부인인 라이펠트 여사가 쓴 <아우카 선교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 부인들은 자신들의 남편들이 순교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다고 기뻐했을까요, 슬퍼했을까요? 몇 년 전에 아는 후배의 젊은 여동생을 아이 하나만 남겨 놓고 하나님이 데려 가셨습니다. 저는 그녀를 위한 추모식을 매년마다 집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철부지 때의 기억이 후배 여동생이 남기고 간 아들을 보면서 되살아났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하던 계(契)가 부도나자, 엄마는 가족 몰래 집을 나갔습니다. 저는 몰려드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다가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를 욕했었습니다. 이제 엄마도 옆에 안 계십니다만, 후배의 여동생이 남긴 아이를 보면서 저의 철부지 어린 날이 떠오른 이유가 뭘까요?

제자들 중에 친인척이나 가족을 탈북시키려다가 자식이나 부모, 친구를 잃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 와서 새 출발을 했어도 그 슬픔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들의 아픔은 여전히 가슴에 담긴 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런 것들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슬픔의 공식을 알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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