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민 소방장·오산소방서
▲ 김현민 소방장·오산소방서

금요일 저녁 6시 30분.

퇴근길 꽉 막힌 2차선 도로에서 운전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갑자기 뒤에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번쩍이는 경광등이 보인다. 구급차가 출동하고 있다.

과연 이 순간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비켜줘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며칠 전 경기 오산시에서 통행량이 많기로 유명한 남촌오거리에서 구급차 출동을 따라가 본 적이 있다.

사이렌 소리를 크게 울리며 구급대원이 마이크로 구급출동을 알렸지만, 차들은 요지부동이다. 당신이 무심코 흘려들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어떤 이에겐 '살려달라는 처절한 아우성'일 수 있다.

"환자가 당신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의 집이 불타고 있다고 해도 비켜주지 않을 건가요."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소방차 길 터주기에 대해 많은 홍보를 해왔다. 모든 소방서는 매월 시민들을 대상으로 소방차 길 터주기 홍보 캠페인을 하고 있지만 생활화는 우리에게 아직도 먼 이야기다.

앞선 차들이 도로 양쪽으로 비켜주고, 소방차 출동로를 만들어주는 영상이 가끔 TV에 나오면 '모세의 기적'이라며 대단한 일이라고 치켜 세운다.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기적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다. 그렇다면 긴급차량이 출동하는데 앞선 차량들이 비켜주지 않는 상황이야 말로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도로 여건이 모두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기에 좁은 도로에 차가 너무 많아 소방차 길 터주기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운전자도 있다.

아무리 좁은 도로라고 하더라도 가장 앞선 차부터 우측길 가장자리로 비켜서고, 그에 따라 모든 차량이 조금씩 비켜준다면 소방펌프차가 지나갈 수 있는 도로폭은 충분히 생긴다.

'소방차 길 터주기'는 운전자 의지의 문제이지, 결코 현실의 문제만이 아니다.

소방차는 재난현장의 허망한 죽음을 막고 재산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달리고 있다. 구급차 안에 있는 사람이 나의 가족, 친구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국민이다.

불타고 있는 집과 건물이 꼭 내 것이 아니어도 대한민국 재산이다. 우리 국민을 살리기 위해, 우리 재산을 지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달려가는 소방차에게 길이 열리는 현상은 결코 기적이 아니라,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상이 돼야 한다.

소방차 길 터주기를 생활화해 허망한 인명피해를 막고, 불필요한 재산피해도 줄여야 한다. 모두가 안전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멀리 있지 않다.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