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게 비지떡' 이산화탄소 소화 설비
2001년 금호미술관서 5세 여아 사망
농도희석 '미봉책' 소화설비 교체 시급

2001년 5월 28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 소화가스 누출 사고로 중태에 빠졌던 A(5)양이 사고 발생 열흘만인 6월 7일 오후 5시25분쯤 끝내 숨을 거뒀다.

강북삼성병원은 A양이 사고당시 소화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너무 마셔 산소부족에 의한 뇌손상으로 의식을 잃은 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급성호흡부전 증후군'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금호미술관 가스누출 사고는 어린이 대상 전시기획전을 관람하던 한 어린이가 2층 전시실 소화용 가스배출 스위치를 장난삼아 눌러 천장 방출헤드에서 이산화탄소 450㎏이 일시에 방출되는 바람에 일어났다. 이 사고로 유치원생과 학부모 등 60여명이 질식, 병원으로 긴급후송되고 50여명은 입원치료를 받았다.

소화용 이산화탄소 가스는 1분이상 노출될 경우 뇌손상을 일으켜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할 수 있다.

▲ 이산화탄소 스프링클러 경고 표지. ⓒ 소방청
▲ 이산화탄소 스프링클러 경고 표지. ⓒ 소방청

5세 여아의 목숨을 삼킨 이산화탄소 소화설비. 이 설비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가장 많이 선호된다. 소화원리는 공기 가운데 산소농도를 21%에서 15% 이하로 낮춰 질식소화를 하는 방식이다.

산소농도가 15%일 때 CO₂ 농도는 29%다. 설계할 때 방호구역의 최소 농도를 34%로 적용하고 있다. 금호미술관 사고처럼 이산화탄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질식사고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이산화탄소 소화설비 화재안전기준(NFSC 106) 제11조>는 질식사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방재·제어실 등 사람이 상시 근무하는 장소와 전시장 등 관람을 위해 다수인이 출입·통행하는 통로와 전시실 등에는 '분사헤드'를 설치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금호미술관 사고때는 450㎏의 이산화탄소 10병이 2층 전시실을 통해 1분여간 방출됐다. 만약 개구부를 누군가 파괴하지 않았다면, 60여명 모두가 사망할 수 있는 아찔한 참사로 비화될 뻔 했다.

▲ 가스소화 설비 배관에 설치된 Odorizer(왼쪽)와 구조. ⓒ 조용선 논설위원
▲ 가스소화 설비 배관에 설치된 Odorizer(왼쪽)와 구조. ⓒ 조용선 논설위원

금호미술관 사고 이후에도 언론에 큰 주목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산화탄소에 의한 질식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금호미술관 이산화탄소 방출사고 후 2002년 4월 12일 전시장 등 관람을 위해 다수인이 출입·통행하는 통로와 전시실 등에는 '분사헤드'를 설치할 수 없도록 관련 규정이 개정돼 그나마 다행이다.

1999년 12월 31일에 마련된 <이산화탄소에 의한 질식사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보면 소화설비의 수동식 기동장치 부근에 소화약제 방출을 지연시킬 수 있는 '비상 스위치'를 설치해야 한다. 비상스위치는 자동복귀형 스위치로서 수동식 기동장치의 타이머를 순간 정지시킨다.

정부는 또 2011년 10월 28일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2012년 2월 5일부터 이산화탄소 소화설비가 설치돼 사람이 질식할 수 있는 장소에는 '공기 호흡기'를 1대 이상 비치토록 했다.

<NFSC 106 제16조>는 지하층과 무창층, 밀폐된 거실 등에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를 설치한 경우는 소화약제의 농도를 희석시키기 위한 '배출설비'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 이산화탄소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주의표지'도 부착토록 하고 있다.

▲ 이산화탄소  소화설비 방출 방식. ⓒ 한국소방안전원
▲ 이산화탄소 소화설비 방출 방식. ⓒ 한국소방안전원

일부 사업장은 이산화탄소가 방사될 때 냄새로 알리는 부취제 방출장치(일명 Odorizer)를 설치하기도 한다.

과연 설치장소를 제한하고 공기호흡기, 비상스위치, 배출설비, 주의표시, 부취제 방출장치 등으로 질식사고 위험을 방지할 수 있을까.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산화탄소 소화설비 방출방식은 전역·국소·호스릴로 구분된다. 국소 방출방식은 전역 방출방식보다 10배 이상 많은 CO₂를 방사한다. 지하 공간에 국소방출방식이 적용되면 과연 문제는 없을까.

지하 6층 가운데 지하 3층 전기실에서 100병의 CO₂가 방출된다고 가정해 보자. 전기실 밖을 빠져 나온 CO₂는 공기보다 큰 비중(1.53)으로 인해 낮은 곳으로 확산된다. 지하 4·5·6층에 있는 사람들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NFSC 106 제17조 이산화탄소소화설비의 방호구역>을 보면 소화약제가 방출될 때 과압으로 인해 구조물 등에 손상이 생길 우려가 있는 장소는 '과압 배출구'를 설치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배출구가 피난동선이 되는 부분으로 배출되도록 잘못 설치된 경우도 허다하다.

이산화탄소 소화약제에 의한 질식사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장소 제한, 공기호흡기, 비상 스위치, 과압배출구 설치로 효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이산화탄소 소화설비 적용을 못하도록 하거나, 기존에 설치된 설비는 단계적으로 할로겐 화합물과 불활성기체 소화설비로 교체해야 한다.

▲한 건물의 지하 6층 가운데 지하 3층 전기실에 설치된 이산화탄소 소화설비(왼쪽)와 지하 공간 국소방출방식 적용 사례. ⓒ 조용선 논설위원
▲한 건물의 지하 6층 가운데 지하 3층 전기실에 설치된 이산화탄소 소화설비(왼쪽)와 지하 공간 국소방출방식 적용 사례. ⓒ 조용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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