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청만 움직이고 타 정부부처 '뒷짐'
관련법규 손질 차량구조 변경도 '시급'
냉각효과 갖춘 車전용소화기 개발돼야

▲ 한 고속버스 운전석 부근에 차량용 소화기가 설치돼 있다. ⓒ 오선이 기자
▲ 한 고속버스 운전석 부근에 차량용 소화기가 설치돼 있다. ⓒ 오선이 기자

지난해 화제는 명차의 대명사로 불리는 '불타는 BMW'였다. 회사 입장에서는 굴욕의 한 해였지만 화재안전분야에는 새로운 리스크를 직접 체험하는 '웃픈 사건'이었다.

BMW 화재 사건 이후 차량용 소화기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문제는 잠시뿐이란 점이다. 현실속의 제도는 아직 '관심밖'이다.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발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은 7인 이상 자동차·화물자동차와 특수자동차에 대해서만 소화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자동차 화재가 발생한다면 초기 진화를 위해서는 소화기가 필수품이다. 차량화재는 오일로 인해 연소 확대 속도가 빠르다. 소화기를 위한 초기 진화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 2일 충남 태안에서는 경운기에서 발생한 화재를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비치된 소화기를이용해 초동진화에 성공한 것은 좋은 사례다.

21일 소방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8년 7월까지 발생한 차량화재는 3만784건으로 하루 평균 13건에 달한다. 5인승 이하 차량에서 발생한 화재는 47.1%로 절반에 가까웠다. 인명피해도 955명이었다.

작년 7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차량소화기에 대한 설문조사는 법규손질이 시급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응답자 206명 가운데 181명이 "모든 차량에 소화기가 설치돼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했다. 이는 87.9%에 해당한다.

현행 자동차 관리법에서 규정한 '7인승 이상에만 설치하면 된다'는 의견은 15명으로 7.3%에 불과했다. 소화기 설치 의무규정을 모르는 사람도 65%에 달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발의된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에도 소화설비에 해당하는 부분 개정은 빠져있다. 차량용 소화기 의무 설치차량을 5인승으로 변경한다는 안 조차없다.

5인승 차량은 관련법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승용차는 승차 정원이 5인인 차량에 해당한다.

작년 11월 권익위가 정부 각 부처와 지자체에 권고한 내용이 헛 구호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권익위와 소방청은 현행 승차 정원 7인 이상 차량의 소화기 설치 의무규정을 5인승을 포함한 모든 승용차로 확대하는 안을 마련했었다.

소화기 미설치 때 운전자나 사업자에게 과태료나 개선명령 등 행정처분이 가능한 안도 있었다. 5인승이하 자동차 화재가 절반에 가까웠지만, 법안은 발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현행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과태료나 벌금규정도 없다.

▲ SUV 차량 트렁크에 에어졸 타입 소화기가 트렁크 아래 보관돼 있다. ⓒ 서동명 기자
▲ SUV 차량 트렁크에 에어졸 타입 소화기가 트렁크 아래 보관돼 있다. ⓒ 서동명 기자

왜 시민의식과 현실은 다른지 <세이프타임즈>가 심층취재했다. 세이프타임즈가 만난 10명의 운전자 모두 차량소화기 설치 의무화에 찬성했다.

자동차에 소화기를 가지고 있는 운전자는 10명 가운데 1명뿐이었다. 차량용 소화기를 구입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보관할 곳이 적당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른 설치 위치는 승차정원 11인 이상의 승합자동차는 운전석이나 운전석과 옆으로 나란한 좌석 주위에 1개 이상의 소화기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또 운전 승차정원 23인을 초과하는 승합자동차 너비 2.3m를 초과하는 경우는 운전자 좌석부근에 가로 600㎜ x 세로 200㎜ 이상의 공간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7인승 이상의 차량과 화물차와 특수차는 소화기 1개 이상으로 규정했지만, 위치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

'차량소화기를 가지고 있다'는 1명 조차도 트렁크에 보관하고 있었다. 트렁크에 보관하면 화재발생 때 신속한 사용이 어렵다.

SUV 7인승 운전자 김모(58)씨는 "지난번 BMW 화재사고 후 소화기를 구입했다"며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트렁크 아래에 그냥 두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래도 고속버스는 양호한 편이다. 승무원은 소화기 사용법 교육도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받는다. <세이프타임즈>가 살펴본 고속버스는 운전석 부근에 2개, 버스 뒤쪽에 2개가 설치돼 있었다.

대전에서 수도권을 운행하는 고속버스 승무원을 만났다.

강모(51)씨는 "요즘은 승객이 먼저 소화기 사용법을 아냐고 묻기도 한다"며 "고속버스는 1년에 세 번 정도 점검하고 교체한다"고 말했다.

무작위로 선정한 서울지역 시내버스에도 ABC소화기 1개가 설치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운전석 주변에 설치돼 있었다.

승객 서모(56)씨는 "일반 사람은 소화기가 버스안에 설치돼 있는지 모른다"며 "소화기 표지나 안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서울의 한 시내버스 안 앞쪽에 소화기가 설치돼 있다. ⓒ 서경원 기자
▲ 서울의 한 시내버스 안 앞쪽에 소화기가 설치돼 있다. ⓒ 서경원 기자

권익위는 승용차는 운전자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권고안이라면 동승자가 타는 조수석에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조수석에는 보관할 공간이 없다.

운전자 이모(37)씨는 "아예 차를 생산할 때 소화기를 설치해 주면 편리할 것 같다"며 "그래야 적절한 공간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자동차산업협회는 '승용차에 소화기 설치시 연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구조변경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운전자 석모(47)씨는 "7인승 차량 소화기 설치가 의무라는 것을 처음 들어봤다. 홍보가 전혀 안 됐다"며 "홍보를 많이 하고 자동차회사는 이익보다는 국민안전을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차량 내 소화기 설치 의무화에 적극 찬성한다고 답했다.

소방청은 '1차량 1소화기 갖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천안서북소방서는 '1(한가정·차량에)1(하나의 소화기·감지기를)9(구비) 합시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자동차용 소화기는 현재 분말소화기만 생산되고 있다.  일반 분말소화기나 에어로졸 소화기는 법정 소화기가 아니다. 소방청자료를 보면 작년 11월16일까지 29만3900개를 생산했다. 0.7㎏ 짜리가 18만9000개를 차지했다. 64.3%다. 무게별로 0.7㎏, 1.5㎏, 3.3㎏이다.

본체 상단에 '자동차겸용'이라는 표시를 해야 한다. 진동시험을 통해 내용물이 새거나 변형도 생기지 않아야 한다.

배규범 소방기술사는 "차량화재는 초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연료에 점화돼 해당 차량뿐 아니라 주변 차량으로의 급격한 연소 확대가 우려된다"며 "모든 차량에 초기진화용 소화기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친환경 자동차 화재진압을 연구하는 인천 M사 연구소 강부장은 "고열이 발생하는 에너지 저장장치의 화재 진압은 냉각효과가 있어야 재발화가 없다"며 "강력한 냉각효과가 있는 소화기나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개발되고 있는 제품도 물과 혼합하는 소화액이라 영하의 날씨에 효과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 충북 증평소방서는 119 삼행시 1[하나의 가정 차량에] 1[한대 이상의 소화기를] 9[구비합시다]로 전국민 소화기 갖기 운동을 하고 있다. ⓒ 증평소방서
▲ 충북 증평소방서는 119 삼행시 1[하나의 가정 차량에] 1[한대 이상의 소화기를] 9[구비합시다]로 전국민 소화기 갖기 운동을 하고 있다. ⓒ 증평소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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