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소방학교 이전 후 충혼탑 '방치'
쓰레기·빛바랜 조화 을씨년 분위기
국립대전현충원 추모객 없어 '썰렁'

▲ 2001년 3월 4일 방화로 발생한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순직한 서울소방 공무원을 추모하기 위한 충혼탑이 관리인 없이 방치돼 있다. ⓒ 김창영 기자
▲ 2001년 3월 4일 방화로 발생한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순직한 서울소방 공무원을 추모하기 위한 충혼탑이 관리인 없이 방치돼 있다. ⓒ 김창영 기자

2001년 3월 4일 오전 3시 47분 방화로 인해 발생한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홍제동 주택 화재 사고로 소방관 6명이 순직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불을 낸 범인은 구해달라고 요청한 할머니의 아들이었고 사고현장에 있지도 않았다.

골목에 있는 연립건물 화재는 도로에 불법주차와 점용으로 소방차량이 진입하기 힘든 구조였다.

▲ 2001년 3월 4일 방화로 발생한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후 세워진 충혼탑 옆에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의 조화가 빛이 바랜 채 쓰러져 있다. ⓒ 김창영 기자
▲ 2001년 3월 4일 방화로 발생한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후 세워진 충혼탑 옆에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의 조화가 빛이 바랜 채 쓰러져 있다. ⓒ 김창영 기자

소방관들은 집주인의 아들이 화재가 발생한 건물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화재 현장에 진입했다. 오전 4시 12분 건물은 결국 붕괴됐다. 건물주 등 8명은 화재 직후 모두 탈출했다.

그러나 현장에 진입했던 소방관 9명이 매몰돼 6명은 순직하고, 3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소방장 박동규, 소방교 김철홍·박상옥·김기석, 소방사 장석찬·박준우 등 6명은 끝내 복귀하지 못하고 순직했다. (이후 1계급 추서됐다)

2001년 3월 6일 서울시청에서 영결식이 거행되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순직자 전원이 안장됐다. 서울시 서초구 서울소방학교에 순직자들에 대한 충혼탑을 세웠다. 서부소방서에는 동판을 세웠다.

▲ 2001년 3월 4일 방화가 원인인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숨진 6명의 영웅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이 서울 소방학교로 옮겨져 설치돼 있다. ⓒ 김창영 기자
▲ 2001년 3월 4일 방화가 원인인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숨진 6명의 영웅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이 서울 소방학교로 옮겨져 설치돼 있다. ⓒ 김창영 기자

이 사고 이후 2001년 3월 7일 부산시 연산동 빌딩화재로 소방관 1명이 또 순직하면서 의무소방대의 설치 계기가 됐다.

사고 당시 소방관들이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비옷)을 지급받고 있다는 점이 지적돼 방화복이 지급됐다.

2019년 3월 4일은 홍제동 참사로 떠나보낸 영웅 6명의 18주기다. 시민들에게 그저 평범한 날이지만 '119 수호천사'인 소방관들에게는 트라우마가 살아나는 날이다.

잊혀지고 있는 영웅을 위해 세이프타임즈(www.safetimes.co.kr) 취재진이 3일 추모 18주기를 앞두고 현장을 다녀왔다.

당시 서부소방서는 사라지고 사고 지점은 은평소방서 관할구역이 됐다. 영웅 6명을 기리기 위한 동판도 서울 서초구 서울소방학교 충혼탑으로 옮겨졌다.

▲ 2001년 3월 4일 방화가 원인인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발생한 순직 서울소방 공무원을 비롯해 많은 영웅을 추모하는 충혼탑 입구가 봉쇄돼 있다. ⓒ 김창영 기자
▲ 2001년 3월 4일 방화가 원인인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발생한 순직 서울소방 공무원을 비롯해 많은 영웅을 추모하는 충혼탑 입구가 봉쇄돼 있다. ⓒ 김창영 기자

영웅의 숨결이라도 느끼기 위해 서울시 서초구 서울소방학교에 순직자들에 대한 충혼탑의 '소재'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서울소방학교가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전화를 돌린 결과 '충격'이었다. 한 소방 공무원은 "지난해 9월 서울소방학교가 은평구에 있는 소방행정타운으로 이전했지만 영웅의 상징조형물과 충혼탑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옛 서울소방학교 정문을 통과하자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정문에는 경비원도 없었다. 이사간 집 분위기 그대로였다.

서초소방서 우면119안전센터 관계자의 소개를 받아 충혼탑에 들어가려 하자 '학교 이전으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바리게이트가 버티고 있었다.

오르막길을 100여m 올라 눈에 들어온 충혼탑을 오르는 계단부터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없었다. 충혼탑은 그 자리에 그렇게 버려져 있었다.

▲ 2001년 3월 4일 방화가 원인인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순직한 박상옥·김기석 지방소방장이 대전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 오선이 기자
▲ 2001년 3월 4일 방화가 원인인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순직한 박상옥·김기석 지방소방장이 대전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 오선이 기자

널부러진 쓰레기와 쓰러지고 빛바랜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의 조화는 쓰러져 있었다. 충격적인 상황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자 어느새 나타난 서초소방서 우면119안전센터 직원은 "누구냐,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다.

취재팀이 "홍제동 참사 18주기에 홍제동 영웅의 동판을 보러 왔다"고 하자 이 관계자는 "내일이 그날이냐"고 되물었다.

한 사람의 추모객도 다녀가지 않은 듯 했다. 홍제동 영웅의 조형물은 소방혼(消防魂)이라고 쓰여진 충혼탑 앞 향불 피우는 제기에 담겨 있는 솔잎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듯 했다.

안전센터 관계자는 "서울소방학교가 있을 때는 신임 소방관이 입교하면 충혼탑을 먼저 참배하고, 교육을 시작했다"며 "현재는 관리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충혼탑 이전 계획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취재팀은 6명의 영웅이 잠든 대전 국립현충원을 방문했다. 한 가정의 아버지였고, 남편이었으며, 아들이었고, 결혼을 앞둔 설레임으로 가득했던 영웅들의 순직 18주기를 앞둔 일요일의 추모 풍경을 기대했다.

▲ 2001년 3월 4일 방화가 원인인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순직한 박동규 지방소방위·김철홍 지방소방장이 대전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 오선이 기자
▲ 2001년 3월 4일 방화가 원인인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순직한 박동규 지방소방위·김철홍 지방소방장이 대전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 오선이 기자

현충원역 2번 출구에서 무료셔틀버스를 탔다. 셔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5분, 35분에 각 묘역과 시설물까지 무료 운행한다.

점심 식사 후 찾은 현충원의 날씨는 그분들의 아픈 상처만큼이나 조용하고 흐렸다. 여섯분의 묘비 앞에는 달랑 맑은 술 한 잔만이 종이컵에 채워져 있었다. 그분들을 그리워하는 동료나 가족이 다녀간 듯 했다.

어떤 분의 묘비 앞에는 새봄처럼 화사한 빛을 머금은 깨끗한 조화들이 놓여 있었지만, 몇 분은 겨우내 추운 바람과 함께 한 빛바랜 조화들이 그대로 있었다.

한분 한분께 고마움의 묵념을 올렸다. 마지막까지 당신들의 목숨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시민을 위해서 뜨거운 불길 속에서 아프고 힘드셨을 그분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영웅들에 대한 추모식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수소문 끝에 참사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소방관은 "지금은 가족들 개인적으로 하고 있다는 가족도 있고, 안하는 가족도 있다"는 문자 메시지로 응답했다.

이 소방관은 "더 이상 질문을 안 했으면 한다.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 2001년 3월 4일 방화가 원인인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순직한 장석찬 지방소방교·박준우 지방소방교가 대전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 오선이기자
▲ 2001년 3월 4일 방화가 원인인 서울 홍제동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순직한 장석찬 지방소방교·박준우 지방소방교가 대전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 오선이기자

[이 기사는 홍제동 참사 6명의 영웅이 사망한 것으로 추청되는 건물 붕괴 시간인 오전 4시 6분에 게재됐습니다. 세이프타임즈는 당신을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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