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입니다. 그리고 3·1독립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어떤 꿈을 꾸고서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한반도 곳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을까요?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분들이 꿨던 꿈에 얼마나 다가가 있을까요?

꿈은 내가 꾸지만 현실은 나와 상관없이 존재합니다. 내가 꾸는 것이기에 꿈은 1차방정식의 풀이처럼 해(解)가 '예' 아니면 '아니오' 하나만 존재합니다. 그러나 나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현실은 다릅니다. 2차방정식에서부터 무한차수방정식까지, 고통을 지닌 한 세대가 다 함몰돼 모든 것이 잊히기 전에는 온전한 해를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서로 공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와 상관없이 내게 주어져 존재하는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내가 꿈꾸는 것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현실의 해법을 구하기 위해 둘의 이해를 뛰어 넘는 제3의 지점에 대한 공감이 필요합니다. 3월이고, 100년째인데 독도를 여전히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되풀이 하는 일본을 볼 때마다 이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사람들은 현실을 풀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밤새 고민합니다. 그런데 '머리만' 맞대고 있으면 '두통만' 옵니다. 동굴과 극장의 우상 안에 스스로 갇혀 전전긍긍만 하게 됩니다. 머리와 더불어 꿈을 보여주는 가슴까지 맞대고 있어야 소통이 되고, 문제풀이를 위해 우상이 제공하는 동굴을 벗어나 끝이 보이는 터널(tunnel)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현실이라는 2차 이상의 고차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머리를 싸매고 동굴로 들어가지 말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그와 더불어 가슴을 맞대고 같이 터널의 끝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이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과 일정한 선을 긋고 여기까지 꿈꿔도 좋다는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담긴 것이 성경(聖經)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그분의 구원사역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간이 다 알 수 없기에 '여기까지만(성경)' 그분을 이해하고 그것을 지키면 구원을 약속하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종종 논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실체를 반영한 '구체어'가 아니라 인간이 지닌 추상적 관념을 반영한 '추상어' 또는 '개념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종종 반론을 펼칩니다.

저는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라는 역사적 현실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고, 인간의 삶은 정글이 돼 퍽이나 팍팍할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꿈을 허락하시면서 성경이라는 선을 벗어나 제 멋대로 된 이야기를 굳이 실체어인 현실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것까지도 성경에서 말하는 현실이라고 거짓 주장하는 사이비·이단들의 역겨운 행동이 더 많아졌습니다. 100년 전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은 3·1독립운동을 통해 일본에게도 먼 미래를 같이 공감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이비·이단들은 이런 비전도 없이 젊은 영혼들을 자기 멋대로 이용합니다.

젊은이들이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쪽으로 젊은이들을 키워내지 않고 자기들이 주장하는 거짓된 신념으로, 헛된 꿈을 꾸라고 젊은이들을 몰아가고 있는 사이비·이단들은 분명히 멸망당할 바빌론의 영혼 장사꾼들입니다(요한계시록 18:13). 이는 일본이 여전히 현실이 아닌 꿈이라고만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3·1독립운동 100주년에 일본을 다시 봅니다. 100년 전 저 나라는 우리에게 뼈아픈 현실이었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현실입니다. 아픔의 강도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현실입니다. 그런데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현실을 넘어 일본과 동행하는 꿈을 꾸셨습니다. 이 꿈을 이제 우리가 풀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3·1독립운동을 일으키신 선조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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