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제가 북향민 제자들에게 썼던 편지가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제대로 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북한에서 익힌 관습대로 행동했던 제자들에게 편지를 썼었습니다. 이 편지를 그들에게 부치지는 않았습니다. 수신자들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저의 SNS에만 비공개로 올려놨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 사연을 공개해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뭐가 그리도 급했는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결혼했던 북향민 제자가 몇 명 있었습니다. 이 일을 두고 그들 및 그들의 가족들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헤어졌었습니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이 너무 급하다고 제가 다른 의견을 내놓자, 그들은 아예 저와 인연을 끊었습니다.

북향민이 한국에서 제대로 뿌리 내기기 위해서는 개인별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시기에 결혼한다는 것이 도무지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혼은 귀한 일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사회적 여건에 따라 그 시기를 정하는 것에는 일정한 조율이 필요합니다. 북한과 한국의 생애주기(life cycle)가 서로 다른데, 이곳에 와서도 북한식 생애주기를 고집하면 탈이 납니다. 한국에 온지 채 5년도 되지 않았고,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상태에서 하는 결혼은 아무리 봐도 위태로웠습니다.

그것은 북한에서의 생애주기를 그대로 가져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자신들에게 적용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생각은 여전히 북한식으로 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시기가 너무 빠르다고 졸업한 후에 결혼하라고 반대했었습니다.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하나님은 구약성경에서 히브리민족에게 그들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뿌리경험을 늘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나돗학교를 떠났던 그들과 제가 다르게 생각했던 것은 그들이 한국까지 온 목표가 무엇인지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북한에서 태어나 중국을 거쳐 왔다는 것을 주로 강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었던 질곡(桎梏)을 그들은 아주 중요한 훈장처럼 여겼습니다.

저는 그들이 한국에 와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현재 한국의 국민이 됐기에 앞으로 일반적인 능력을 갖춰 자립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결혼하고 나서도 국가 보조금으로 생활을 유지해야 하고, 육아까지도 전적으로 이것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나돗학교를 떠났던 그들은 자신들이 왜 한국까지 왔는지 알고 있다고 착각할 뿐 실체를 몰랐습니다. 어설픈 종교적 체험으로 자신들이 이 땅까지 온 이유를 채우려고만 했습니다.

북향민이 한국까지 온 것은 역사적 사건이기에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희미하게 그 일의 전모가 드러납니다. 또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이유가 개인별로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때 이른 결혼이 아니라 올곧은 기도와 겸손이었습니다. 목숨 걸고 여기까지 왔으니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철부지 자신감으로 이곳저곳에서 주는 보조금에 의탁해 결혼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이 땅에 제대로 정착하라고 그들에게 도움을 줬던 조력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뜻에서 남북통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북향민을 만나 문화충돌을 겪다 보니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통일비용을 산정해 준비하는 일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갈 수도 있는 문화충돌의 완충지대를 만드는 일을 병행하지 않으면, 우리의 열정과 수고가 모래 위에 집짓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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