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려본 사람은 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시작됐다가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링거까지 맞는 신세가 된다. 가벼운 노크 소리로 시작되는 감기에 건강한 몸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요즘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가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로 인해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던 날 우리는 그 한 가운데 서 있었다. 기업은 도산하고, 급여는 밀리고, 어음은 휴지가 되고 산에는 양복 차림의 등산객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던 그해 겨울을 우리 세대는 가장이라는 견장까지 짊어지고 버텼다.

우리가 흔히 'IMF 사태'라 부르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우리 경제구조는 송두리째 예속됐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 구조 속으로 재편됐다. 사실상 미국의 지배구조에 있는 IMF가 미국의 경제논리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영화에도 잠깐 나오는 이야기다. 시장은 무차별 개방되고, 고용은 위축되고, 해고는 자유로워지는 말 그대로 강한 자만 살아남는 신자유주의식 경제 정글이다.

그 후로 21년이 흘렀다. 지금 우리의 경제실정은 어떠한가. 슬금슬금 소매깃을 파고드는 감기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가.

물론 당시 사태의 결정적 원인 중 하나인 외환보유고는 현재 200배가 넘는다. 그리고 내년 경제성장률도 2.6%(산업연구원) 예상으로 OECD 국가들에 비해서는 크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모건스탠리 자회사 MSCI는 2014년 우리나라와 대만을 예비선진국 리스트에서 삭제하고 아직까지 요지부동이다. 무디스는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2.3%로 낮춰 잡았다.

제조업 가동률도 문제다. 올해 10월 들어 74%로 다소 회복됐다고 하나 경제 활성화가 아닌 공장폐쇄로 인한 착시현상이다.

물론 한 번 호되게 경험했기 때문에 국가부도가 나도록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나 국민들의 수준이 당시와는 많이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심을 가계경제로 돌려보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2018년 우리나라 가계 빚은 1500조원이 넘는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30일 기준금리를 1.75%로 올려 가계빚 증가세를 막고자했지만 취약계층은 오히려 부실화위험에 더 내몰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속도는 OECD평균 7.8배에 달한다. 부동산과 서민대출이 복합적으로 맞물려있는 가계부채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취약한 자본주의 하부구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빚은 새로운 뇌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 김춘만 종합뉴스부장
▲ 김춘만 종합뉴스부장

1997년 한보 등 대기업 중심으로 일어났던 무분별한 대출이 이제는 서민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다. 이러한 현상이 깊어지면 국가부도에서 가계 부도를 걱정해야 한다.

영화 말미에 이아람(한지민 분)이 한시현(김혜수 분)에게 던진 화두가 기억된다.

국가부도는 어찌 넘겼다 해도 국가의 기간인 가계가 무너지면 그야말로 헤어나기 어려워진다. 경제의 외형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소득주도 경제를 통한 삶의 체질개선도 중요하다.

최저임금 인상도 다소의 부작용은 있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최저임금 1만원에 나라 망할 듯 격앙하던 국회의원들이 내년 세비를 2000만원씩이나 올리겠다는 발상부터 바꿔야한다.

무엇보다 양극화가 해소돼야한다. 외환위기때 금모으기로 국가위기를 극복했다면 이제는 나눔의 정신으로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나눔은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다. 종부세, 법인세 인상도 누군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 일부 보수언론의 일방적 매도는 1997년에 지은 죄를 반복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처럼 부자도 소용없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감기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다. 그리고 완치가 없는 불치병이기도 하다. 평소에 체질을 건강하게 하고 걸렸을 때 바로 대처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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