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세종 102권, 25년(1443 계해 / 명 정통(正統) 8년) 12월 30일>

2018년 10월 9일 천상계

▲ 전지선 기자
▲ 전지선 기자

"모든 국민에게 훈민정음을 널리 쓰이고 있으니 천상에서도 염려할 일이 없구나. 어느 구름 아래 귀를 기울인들 글을 알지 못해 억울한 곡소리 들려오질 않는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오나 물밀듯이 넘쳐나는 신조어가 한글에 낄끼빠빠(낄때 끼고 빠질때 빠져라)하지 못해 우리 훈민정음이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되고 있습니다. 요즘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중시하는 시대 변화로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고 싶다)한 삶을 원하는 국민이 많아 우리 훈민정음보다는 편리하고 빠르게 말할 수 있는 언어의 사용 비중이 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더냐? 갑분싸, 낄끼 … 그것은 외계어가 아닌가?"

"전하, 이것이 바로 신조어 이옵니다."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우리 한글이 요즘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신조어 열풍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 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알고 있어야 할 한글날의 유래를 살펴보겠다.

■ 한글날은 원래 '가갸날'이었다

우리나라는 제2외국어 열풍이 불며 어릴 때부터 영어 외에 중국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쓰는 글과 말은 한글이다. 10월 9일은 국경일 ‘한글날’로 지정됐다. 한글날은 우리 한글을 펴낸 것을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날이다. 세종 25년(서기 1443년) 훈민정음이 완성되고 3년간 시험을 거친 뒤 세종 28년(서기 1446년) 국민들에게 반포됐다.

한글이 있기 전, 왕족이나 사대부 계층이 쓰던 글은 한문으로 일반 국민들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조선 제4대왕 세종대왕은 이런 국민들을 불쌍히 여겨 훈민정음 즉, 한글을 집현전 학자들과 오랜 연구 끝에 만든 것이다. 오늘날 유네스코는 2900종의 언어 가운데 한글을 최고의 언어로 평가하고 있다.

한글날이 처음부터 한글날은 아니었다.

세종실록 9월조를 보면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1926년에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이라고 지정했다.

가갸날이라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조선 전기 훈민정음을 반절식으로 배열한 반절본문에 '가, 갸, 거, 겨, 고, 교 … '로 시작되는 것을 바탕으로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추측된다. 그 후 1928년 한글날로 정식명칭이 변경되고 1940년 훈민정음 원본을 발견해 광복의 해 1945년에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됐다.

■ 신조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줄임말'은 단어의 일부분이 줄여진 말을 뜻한다. 이는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비표준어로 우리가 흔히 쓰는 등등(그 밖의 것을 줄임을 나타냄) 외에 수많은 줄임말이 있다. 최근 신조어의 경향은 말을 줄임에 있다. '굳이 줄이지 않아도 될 말'까지 줄여 말하는 현상이 유행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떤 말은 줄여도 되고 어떤 말은 줄일 필요가 없다는 말은 모순이 아닌가? 할많하않(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공청(공기청정기), 애빼시(애교 빼면 시체),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외에도 영어와 합성된 법블레스유(법 + bless you : 법이 아니었으면 너는 이미 끝났다), 빼박캔트(빼도박도 + can't : 빼도박도 못한다), 사바사(사람 by 사람 : 사람마다 다르다)등 하루 단위로 새로운 줄임말이 쏟아지고 있다.

■ '별다별줄(별걸 다 줄인다)'이지만 모르면 '아재'

요즘 세대는 외래어와 한글의 구별 없이 아무렇게나 섞어 새로운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더 나아가 줄여 말하기까지 한다. ‘3호선 매봉역’이라는 노래의 가사 가운데 ‘시간은 참 빨라 어제와 오늘의 유행도 달라’의 구절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상황이다. 세대 간 소통 차이도 점차 벌어지고 있다.

ⓒ 와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영상 캡쳐.
ⓒ 와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영상 캡쳐.

한 업체에서는 지난해 8월 70대 어르신들에게 젊은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줄임말을 알려준 뒤 뜻을 맞추는 과정을 유튜브 영상에 담았다. 18만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상은, 대부분 어르신들이 뜻을 맞추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사진 속 문제는 '세젤귀(정답 :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다.

김정남 할아버지 외에 3분은 엉뚱한 답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영상을 본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이 맞추려고 하는 모습이 귀엽다' 등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지만 어르신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것이다.

어르신들에게는 몇 분짜리 영상이 전부가 아니라 세상에 나갔을 때도 말의 뜻을 몰라 당황한 적이 얼마나 많겠는가?

ⓒ KBS 프로그램 1박 2일 영상 캡쳐.
ⓒ KBS 프로그램 1박 2일 영상 캡쳐.

70대 뿐만 아니라 4~50대 역시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방영된 1박 2일에서도 '아재 퀴즈'를 열었다. 사진 속 'ㅇㄱㄹㅇ(뜻 : 이것은 진짜다)'은 '이거'와 영어 'real'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해 모음만 쓴 것이다.

하태권 해설위원은 '아 그래요?'라는 엉뚱한 답을 내놨다. 당시 같이 출연한 이영표 역시 뜻을 몰라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출연자들은 서로 아재라고 놀리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줬다.

신조어는 끊임없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모르면 아재라고 놀림을 받는다니 얼마나 치열한 세상인지 실감이 난다.

■ 10월 9일 한글날, 우리들의 자세

말을 줄이는 등 신조어가 생기는 것은 문화의 흐름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증거다. 한글 역시 시대적인 흐름에 있어 없어진 말과 새로운 말들이 생겨났다. 이는 시대가 변화하듯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됐다.

하지만 현재 신조어는 세대 차이를 비롯해 소통의 단절까지 만든다. 무작정 줄여 앞 글자를 따서 말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유행이 된다면, 의미를 담고 있는 한글이 파괴되는 것은 머지않았다.

줄임말은 말을 줄임으로 시간적으로 절약될 수 있다. 신조어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젊은 세대역시 신조어로 인해 상대방에게 빠르게 의사를 전달 할 수 있음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순우리말 중에도 준말이 있다. 초아(초처럼 세상을 비추는 아이), 은가비(은은한 가운데 빛을 발하라) 등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순우리말 역시 시대에 맞춰 사용하기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한글을 지키면서 유행을 따라갈 수 있다면 그것을 익히는 것이 우리국민이 가져야 할 사명감이 아닐까?

매년 한글날마다 열리는 외국어나 외래어, 신조어 사용을 무조건적으로 근절할 것이 아니라 세대에 상관없이 널리 쓰일 수 있는 한글을 찾고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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