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용 논설위원
▲ 정찬용 논설위원

대한민국이 공화국으로 불려지는 여러 가지 가운데 명실공히 전세계 대표라 해도 과함이 없는 표현이 '학원 공화국'이다. 우리나라만큼 혹은 그 이상 사는 나라들 어디를 가보아도 학원가가 웬만한 도시마다 어김없이 형성돼있는 곳은 없다.

그 중에서도 서울 대치동 학원가는 온 나라의 교육 풍향계라 일컬어도 될 정도로 우리나라 모든 교육의 정보가 집중되고 분석되며 전파되는 곳이다. 새로운 교육 정책이나 환경이 조성될 때마다 언론의 초점이 된다. 그 곳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그들의 학원이 굳세게 살아남는 것이다. 그들에게 공교육 정상화는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할 치명적인 환경이다. 그들은 교육 당국, 시민 단체들이 사교육 억제와 보다 유익한 교육 현장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든 필사적으로 무력화시키려는 본능적인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최강의 방어 전력으로 활용하는 집단은 바로 학부모들이다. 그 중에서도 엄마들은 그들의 영업 핵심 타깃이다. 그들이 퍼뜨린 말이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드립이었다. 엄마들에게 정보를 주는 사람은 바로 그들 자신이다.

엄마들 중에는 당연히 올바른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종종 학원 원장들의 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는 데 위협이 되는 '고수'도 없지는 않았다. '인성교육이 우선이고 아이들도 행복하게 삶을 영위한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주변 엄마들의 많은 호응을 얻는 그는 학원 원장들에게는 '공적'이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였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다니는 주변 영어 학원이 입학 시험을 치기 시작하면 여섯살 먹은 아이를 가진 엄마들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해 결국 고수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고수 엄마와 아이도 결국 불안감과 외로움으로 대세에 동조하게 된다. 강남·서초 등지에서는 일곱살에 빅3 영어 학원 입학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여섯살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닌다. 학교에서 예체능 교육까지 시켜주는 사립초는 3학년이 되면 '빼서' 공립으로 옮긴다.

학원을 보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초3 때 고등학생들이 하는 수학의 정석을 들어갈 수 있다. 그래야 대치동의 수학 전문 학원의 탑 클래스 입원이 가능하다.

특목고 대비 경시대회 출전을 위한 학원도 다녀야 하고 6학년까지 영어도 끝내 놓기 위해 또 영어 학원을 가열차게 다닌다. 한 반으로 보면 한 두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게 엄마들이 공부를 미친듯이 시킨다.

모두 학원 원장들의 경쟁 심리 유발 작전, 엄마들의 과거 열등감 부활 작전 그리고 못 다 이룬 과거 욕망의 투사 유도 작전에 말려들어 눈빛부터 제정신이 아닌 모습을 보인다. 

그들이 정신이 드는 것은 대개 아이들의 중2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들면서다. 상당수의 아이들은 수억원을 들여도 공부쪽으로는 비전이 없음을 생생한 민낯으로 보여준다.

엄마들이 심각한 갈등에 휩싸여 상담을 하러 가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 학원 상담실장을 찾아 '작전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유전자의 소유자라거나 벌써 방전의 기미가 보인다는 합당한 걱정을 피력하면 상담실장들은 거의 예외없이 이런 말을 시전한다.

"나중에 아이들이 그 때 왜 때려서라도 공부 시켜주지 않았냐고 항의해요. 어떻게 해서라도 보내 주시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15~16세에 방전돼 '좀비' 상태에 빠진다. 돈이 있는 집은 신형 스마트폰 선물 등으로 보상 플랜을 가동해서라도 공부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반감과 자신의 삶에 대한 무기력을 무럭무럭 키우게 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엄마들의 마리오네트 신세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바로 그 공부를 잘하는 것 때문에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인생을 학창 시절에는 꿈 꿀 수 없다. 그들은 엄마들의 희망이며 자존심의 근원이자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뜬금없이 찾아 온 요리사의 꿈, 프로그래머의 꿈, 작곡가의 꿈은 입 밖에 나오자마자 바로 이 말과 함께 퇴치된다.

"대학 가서 취미로 해."

요즘 인기있는 국제학교에 들어가려해도 한 달에 300만원짜리 학원을 다녀야 가능하고 송도에 있는 한 국제학교를 다니는 강남구 아이들은 새벽 6시에 버스를 타고 가서 밤 12시까지 대치동 학원가를 돌고 귀가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한다. 

제대로 돈을 들이면 아이가 바뀔 거라고 굳게 믿는 엄마들 때문에 생긴 신종 잡으로 '에듀맘'과 '입시 컨설턴트'라는 게 있다. 이 둘은 합동으로 그런 엄마들이 자발적으로 부를 재분배하도록 만든다. 컨설턴트는 그런 아이의 분 단위 학업 플랜을 작성하고 에듀맘은 아침 기상부터 학원 픽업까지 포함해 그 플랜을 실행한다.

그렇게 거금을 들여 자신의 아이를 사육하는 엄마들은 그렇게 큰 아이들이 나중에 자신의 인생 플랜도 제대로 못 짜는 찌질이 대열에 합류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엄마들의 모든 시계는 대학 입학시험 발표일까지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하는 키는 의외로 단순하고 쉽다. 초등학교부터 토론식 수업을 도입하고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의 하나일 뿐인 것이 되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는 성숙도가 확보되면 오로지 자신의 사업 유지에만 혈안인 자들과 그들의 음모에 자의반 타의반 동조하는 것으로 아이들을 옭아매는 엄마들의 부당 행위는 쉽게 실행되지 못하게 된다.

물론 명문대와 '인 서울'의 티켓만을 목표로 대부분의 아이들을 좀비화하고 탈학교화 하는 고등학교 수업도 아이들의 반발로 인해 불가능해질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아이들이고 현재의 학교다. 그 때까지 손놓고 될대로 되라고 방치하는 건 엄청난 직무유기이자 장래에 예측 불가의 사회 불안 요인을 예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교육부 장관은 제일성으로 고교 무상교육을 외쳐서는 안 된다. 그가 해야 하는 것은 일반 중학교, 고등학교에 사회의 일반적인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모든 커리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래야 공부 외에 다른 것들을 하는 아이들도 학교를 다닐 이유가 생길 터이고 그러면 지금의 온갖 비정상적 교육 논의도 쉽게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제발 언론은 강남 대치동 소식을 전국에 굳이 알리지 말기 바란다. 그 동네가 대한민국의 사교육 표준이 된 것의 구할은 언론의 자발적 홍보에 기인했다. 

■ 정찬용 논설위원 =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도르트문트 대학교 공간계획학 석사, 하노버대학교 환경 및 조경개발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에버랜드에 근무하던 1999년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를 출간, 통산 140만부를 팔아 영어 학습서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로 인해 영어학습계에 발을 들여 토스에듀케이션, 지엔에듀케이션 등에서 언어연구소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정찬용 교육>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영문독해 절대로 하지마라>, <대한민국의 미친 엄마들>, <영어성공>, <시리와 함께 영어하자> 등의 책을 냈다. 2018년 그동안의 영어 학습 상담과 컨설팅 완결판인 <사실은 넌 영어바보가 아니야>를 '다스부크'라는 출판사를 설립해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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