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는 70년을 산다. 조류가 비슷한 크기의 포유류보다 수명이 길다하나 솔개의 70년은 매우 긴 편이다.
40세가 되면 솔개는 삶의 중대 기로에 서게 된다. 부리와 발톱이 너무 자라고 날개마저 두꺼워져 비행이 힘들어진다. 결국 사냥이 어려워지고 죽음의 문턱에서 외로운 선택을 해야한다.
이때 솔개는 약 6개월간 자신과의 고단한 싸움을 시작한다. 바위에 부리를 부딪쳐 뽑아내고 새로운 부리가 자라게 한다. 다음에는 발톱을 뽑아내고 마지막으로 두꺼운 깃털을 뽑아내 새로운 깃털이 자라게 한다. 운명을 건 싸움에서 이긴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고 30년을 더 힘차게 비행한다.
어느 날 마트에서 쇼핑을 하다 점심을 먹으러 음식코너에 갔다. 그동안 전시용 메뉴를 선택해 카운터에서 직접 주문을 했는데 말끔히 치워졌다.
잠깐 당황했는데 옆에 주문용 터치 스크린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있었다. 나이 지긋하신 분이나 아날로그적 감성이 풍부한 분께는 뜻하지 않은 '재앙'이다. 그나마 음식분야는 현금인출기(ATM)나 민원자동발급기에 비해 좀 늦은 편이다.
한 때는 제조업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러나 지금 제조업은 대표적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서비스와 지식산업을 넘어 현재는 사물인터넷(IOT)이 산업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다. 그 뜻을 이해하기도전에 첨단문명은 우리생활 곳곳에 침투해있다.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과 함께 디지털 원시인이 공존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세상은 점점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반비례로 세상에 부적응해간다.
특히 386세대 이상은 사회와 문명의 변화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은 신문맹이 되고 만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 아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저 편으로 뒤처지게 된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할 때 흔히 세월과 나이 탓을 많이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세월은 모든 것을 노후와 시키고 의욕마저 감퇴시킨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스스로 자신을 규정짓는 무기력함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변화의 임계점에서 주저앉으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는 영원한 미궁에 빠진다.
솔개가 생체수명이 다하는 나이에 삶과 죽음을 건 싸움에서 스스로에 굴복했다면 찬란한 30년의 세월은 주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변화는 아픔을 필연으로 강함을 잉태한다. 변화는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이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과감히 환부를 도려내야 새살이 빨리 돋는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면 바로 오늘 내게 새로운 날개를 선물하자. 푸른 창공을 날아가는 새로운 젊음의 솔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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