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국가방화협회 표준(코드) 1072(NFPA  Standard/Code 1072)
▲ 미 국가방화협회 표준(코드) 1072 (NFPA Standard/Code 1072)

2001년 9·11 테러후 2004년 발간돼 아마존에서 역대 최장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9·11 테러 당시 미국내 테러와 특수재난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이자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도 일한 리처드 A. 클라크의 <모든 적들에 맞서(Against All Enemies : Inside America's War on Terror)>입니다.

책은 전반부에서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들이 테러나 대량살상무기, HAZMAT 같은 특수재난의 위협으로부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앨빈 토플러가 1090년 초에 발표한 <전쟁과 반전쟁(War and Anti-war)>에서 '지금 주요국이 가지고 있는 대량살상무기만으로도 3일안에 전 인류를 몰살시킬 수 있다'는 내용 못지 않은 큰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후반부는 미국이 그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지구에서 역사상 전무한 엄청난 예산과 노력을 쏟아 부어 국가적인 대응 체계를 어떻게 갖추었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기술 발전과 더불어 HAZMAT과 같은 산업적으로 다량으로 쓰이거나 군사적으로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돼 대규모의 지역에 다량의 인명·재산·환경에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들에 대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전국가적인 체계를 갖추었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특수재난에 대한 대응체계를 갖추기 위해 미국은 통칭 '애국자법(Patriot Act)'을 통과시켜 유례없는 강력한 권한을 당국에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개인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해 일부 부처의 권한 남용 등이 드러나면서 2015년 6월 폐기되기도 했습니다.

애국자법은 폐기됐지만 미국이 특수재난에 관한 법을 제정함에 있어 우리와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HAZMAT 개념이 미국 국가방화협회(NFPA)로부터 나왔다고 설명드렸는데요. NFPA는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 정치적, 개인적인 목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합니다.

미국에는 정치적이거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각 분야에서 사회 전 구성원의 '안전'과 '재산'과 같은 가치를 지키기 위한 고유한 역할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전문가 집단이 많습니다.

연방 정부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도 이들의 가치 추구에 공감, 이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표준안 등을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특수재난과 HAZMAT에 관해서는 NPFA 표준(코드)을 기준으로 법령을 제정하는 식입니다.

공적인 가치와 전문성에 기초한 의견수렴과 철저한 이행이 미국을 체계가 갖춰진 수준 높은 국가로 유지시켜 주는 기반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수재난과 테러와 관련해 미국 연방정부에서 법과 규정 등을 제정함에 있어 명실상부한 기반은 NFPA 표준입니다. 매뉴얼, 지침, 체계, 전문 자격인증, 장비 등 관련된 모든 것에 있어 기준점이 됩니다.

NFPA 표준은 그 자체로 10여개주에서 해당 분야에 관한 법으로 그대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배경과 실질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재난과 테러에 관한한 가장 강력한 집단과 기준으로서 'NFPA'와 'NFPA 표준'이 손꼽히는 이유입니다.

NFPA 표준은 주(State)를 넘어 연방 차원에서 화재에서 자연재해, 테러를 모두 포함한 재난에 대해 현장 전문가의 입장에서 세부적인 부분을 포함한 안전기준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표준의 내용은 결코 하나의 기관이나 개인이 주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국가와 지방 소속 기관과 분야별 전문가들이 무보수로 참여합니다. 재난과 관련된 종사자들은 NFPA 위원회 위원이 되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생각합니다. 해당 분야 위원은 최고의 전문가로 공인된 것을 의미합니다.

NFPA에서 결정된 표준안은 연방법령(CFR) 뿐아니라 독립적인 연방 부처와 주 정부의 규정과 매뉴얼에도 즉각적으로 반영됩니다.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만 해당있는 부처들만이 협의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1년에 최소 2차례는 재난에 관련된 모든 기관과 전문가들이 발생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비한 심도깊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토의를 진행합니다.

이러한 체계를 통해서 강제성이 없는 상황에서도 독립적인 기관들이 상호 협조를 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고도 강력한 협업체계는 모든 미국 국민들과 전세계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김흥환 소방장·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
▲ 김흥환 소방장·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

정보공유와 기관·집단간 협업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바탕으로 소수일지라도 긴 시간의 토의 속에 모든 의견들을 차별없이 반영, 합의안을 도출해 방대하면서도 전문적인 내용들을 하나의 표준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표준안은 지속적으로 주요한 통계나 사고 사례를 반영해 보완됩니다. 보완된 내용은 실시간 이메일로 통지됩니다. 법과 규정으로 현장에서 반영해야만 하기 때문에 재난과 사회적 변화에 따른 반영이 매우 빠르고 지속적입니다.

NFPA 표준은 383개로 주요 코드 내용은 △화재 △현장대응장비 △소방설비 △원자력발전소 △연료전지발전설비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코드는 계속해서 추가되고 세분화되거나 통합되기도 합니다. 코드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5년마다 재발간됩니다. 예를 들면 하이브리드·전기차의 대중화로 인한 위험이 커지고 필요성이 제기되면 해당 분야별 위원회 결정에 따라 정기회의에서 검토 후에 추가되는 식입니다.

이 가운데 HAZMAT과 관련한 표준으로는 △NFPA 471(HAZMAT 사고 대응을 위한 실무권장지침) △NFPA 472(HAZMAT/대량살상무기 사고에 대한 대응자의 역량에 대한 표준) △NFPA 473(HAZMAT/대량살상무기 사고에 대한 대응 구급대원의 역량에 대한 표준) △NFPA 1072(위험 물질/대량살상무기의 비상 대응 요원의 전문 자격에 대한 표준) 등이 있습니다.

현장대응요원이 갖춰야할 요건을 명시하고 이에 따라 적절한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특수한 유형의 재난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세부적으로 작성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군 외의 기관에서 HAZMAT나 테러와 관련한 상세한 정보나 구체적인 협업대응체계 등이 미비하다고 생각됩니다.

NFPA 표준을 현장 중심의 소방관과 같은 전문가들이 제정하는 것처럼 현장의 중심인 소방이 국가직화돼 나머지 분야별 중앙기관 속에서도 제대로 된 중심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분야별로 나뉘어진 중앙기관의 협업이 필수적인 대형복합특수재난 발생시에, 골든타임이 10분 이내인 최초 현장에서 지방직인 소방의 현장지휘관을 통해 신속한 결정과 적절한 대처가 이뤄지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이후에도 현장 지휘관에게 적절한 권한 부여와 평소 특수한 상황이나 수준별 재난에 맞는 적절한 훈련을 받은 전문가를 육성해야 합니다.

뉴테러리즘과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재난에 테러의 영역을 포함시켜 안전의 개념을 안보로 확대시킴과 동시에 중앙부처와 소방(화재진압·구조·구급), 군, 경찰, 연구소, 사업장의 안전관리자에 이르기까지 평소부터 깊게 연계되고 사고 발생때는 큰 틀에서 모든 노력이 하나의 방향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과거와 달리 기술발전과 분야의 세분화로 인해 전문지식이 없이는 간단한 조치조차도 전혀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종교나 정치적 집단 외에 경제적 어려움이나 개인·사회적 불만으로 인해 고의적인 개인 행동 역시 대형복합재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특수재난과 관련해 법과 기준이 되는 NFPA 표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에는 특수재난 대응의 전문성을 공인하는 전문 자격인증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 김흥환 소방장(36) = 1983년생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2006년 화생방 병과 소위로 임관해 2015년에 대위로 전역했다. 2015년 옛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 중앙119구조본부 화생방 대응분야 경력직 소방관으로 채용됐다.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 HAZMAT 분야에서 현장 대응 근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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