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한 사람은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明者因時而變), 지혜로운 사람은 때에 따라 제도를 바꾼다(知者隨時而制)" 중국 전한(前漢)의 선제(宣帝) 때 환관(桓寬)이 편찬한 염철론(鹽鐵論)의 우변(憂邊:변방을 걱정하다) 제12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을 중국의 시진핑(習近平)이 그의 강연에서 지도자 사고의 유연함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하는 바람에 유명해졌습니다.

'직선적이다'라는 말 안에는 '약간 피곤하다'라는 의미가 같이 담겨 있습니다. 자연은 직선을 잘 만들지 않는데 이와 다른 생각을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이를 거스르는 행위에는 당연히 거친 반발이 따라옵니다. 시진핑이 인용했던 문장이 사람들에게 회자됐던 이유는 곡선의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지도자가 그리웠던 탓일 수도 있습니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는데 이 팽창의 기본 요소는 원입니다. 그리고 타원이지만 우주와 지구가 둥글기에 자연에는 제대로 된 직선이 거의 없습니다. 또 개체는 계통을 닮기 마련인 법인지라, 지구에 있는 자연의 모습과 질서도 곡선을 많이 닮았습니다. 직선에 익숙해져 있는 인간의 눈에만 직선이 아니면 모두 무질서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기저에 있는 것이 곡선의 질서이기에 자연에는 곡선을 토대로 한 소용돌이 패턴이 두루 퍼져 있습니다. DNA가 보여준 이중나선구조처럼 모든 생명체의 성장 패턴에도 직선보다 나선구조가 더 많이 등장합니다. 벌과 나비는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고 맹금류가 사냥할 때도 활모양으로 먹잇감에 접근합니다. 도망가는 사냥감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선으로만 도망가지 않고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어진 선을 그리며 도망갑니다.

주로 인간만이 직선을 만들고 숭앙합니다. 점과 점 사이의 이동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직선이라고 여겨 직선이동을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에너지 열효율이 30~40%밖에 안 되는 내연기관을 실은 자동차의 고속이동을 위해 직선도로를 만들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없앤 후 직사각형의 아파트와 건물을 짓습니다. 사행천(蛇行川)을 직선화하기 위해 정비하고, 갯벌을 메워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없앤 다음 그곳에 자랑스레 직선으로 된 시설을 짓습니다.

얼마 전부터 곳곳에서 곡선이 인간이 만든 직선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고통을 감내하며 침묵하던 곡선들이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직선에게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효율적이어서 막강한 힘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직선이 곡선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스러졌습니다. 우리나라에 나타나기 시작한 열대야도 그 중 하나입니다.

기독교는 일차적으로 직선사관입니다만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우주나 자연의 기본 구조와 달리 직선만을 인정하신 것일까요? 곡선을 토대로 한 나선형사관은 허락하시지 않으신 것일까요? 인간의 삶에 일정한 목표와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일부에서 기독교를 지나치게 직선사관으로만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전도서 3:9~10)

예수님의 강림에 의한 종말을 진정으로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종말이 곧 새로운 시작인 부활의 곡선이 됩니다. 종말에는 심판과 더불어 회복이 일어나기에 혹자의 염려처럼 종말이 두려운 끝을 알리는 직선만은 아닙니다. 종말을 핑계 삼아 두려움을 조장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사이비 집단은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먼 자기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다고 했으니(요한계시록 21:5) 기독교인에게 종말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비 집단처럼 위장된 종말이 두려워서 '그냥 이대로 있게 하소서'를 외치는 사람들은 곡선을 두려워합니다. 인간이 만든 종말이 하나님이 만드신 회복을 이길 수 없으니까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 정이신 논설실장·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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