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에 가고 싶다] 소유할 수 있는 사랑은 없다
[그 성에 가고 싶다] 소유할 수 있는 사랑은 없다
  • 이지운 작가∙시인
  • 승인 2018.07.30 00:0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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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내 사랑은 탈출로를 파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프란츠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사랑은 자유를 얻었다 (중략) 사랑을 자제하도록 하려는 나의 시도들은 번번이 모두 사랑의 승리로 끝났고, 매번 사랑의 계획에 복종해야 할 뿐 다른 것은 없다고 가르치며 또다시 더 큰 굴욕만을 내게 남겼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세계 모든 이들은 환호했다. 통일 독일이라는 이름으로 행복이 넘쳐나리라 생각하며 축배도 들었다. 그러나 통일이 되었음에도 행복은 여전히 먼 곳에 있었다.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혼란과 불안, 바로 이것이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모니카 마론의 대표작 <슬픈 짐승>의 탄생 비화가 되었다.

주인공 '나'는 애인인 프란츠를 만나기 1년 전, 거리에서 발작을 일으키며 죽음을 경험한다. 남편과 딸이 있는 워킹맘인 '나'는 그로 인해 인생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게 사랑이라는 걸 깊이 깨닫는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다 가정이 있었지만, 운명이라고 여기며 과감하게 사랑을 나눈다. 프란츠는 결코 가정을 깨려는 마음을 갖지 않은 채 '나'의 집에서 밤 12시 30분까지 알몸의 유희를 벌이고는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향한다.

팔십 살인지 백 살인지 나이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된 '나'는 수십 년 전에 떠난 프란츠를 그리워하며 스스로 고립된 채 늙어간다. 그녀의 유일한 낙은 프란츠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겨진 침대 시트 위에 누워 그를 추억하는 일이다.

"침대 시트에 강렬한 빨강, 초록, 보라색이 섞인 큰 꽃들이 프린트되어 있는데 나는 그 꽃들을 보면 식육식물의 꽃들이 떠오른다. 바탕색이 검은 색이어서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아름다운 내 연인의 정액 흔적을 알아볼 수 있다..."

▲ 모니카 마론 작가
▲ 모니카 마론 작가

그녀는 프란츠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의 아내를 질투하게 되고, 급기야는 집착으로 달음박질치며 자신들의 사랑을 폭로하고 만다. 이는 사랑이라는 철로에서 도덕적으로 탈선해버린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왜 그런 도발을 감행했을까. '나'는 하인리히의 희곡에서 '그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죽는 것'이라는 펜테질레아의 대사를 인용하며 질투와 소유욕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다면, 사랑은 소유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대체 어디에 저장할 수 있을까? 마음속 깊은 곳에 그를 가둔다고 해서, 그 사랑이 그대로 머물러 있을까?

사랑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만질 수도 없는 기체 상태이며, 그릇 속에서 찰랑찰랑 흔들리는 액체 상태이며, 물렁물렁해도 일정한 모양을 갖춘 고체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물질이 기체, 액체, 고체의 형태를 두루 갖출 수 있을까? 이는 사랑이 형태는 있되 형태가 없는 형이상학적인 물질이기에 가능하다.

무색, 무취, 무형의 존재. 보려 해도 볼 수 없고,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는, 오감을 총동원해도 결코 감지할 수 없는 존재인 사랑을 소유할 수 없기에 작가는 슬픈 짐승이라고 했다. 프란츠와 식육식물 위에서 벌거벗고 하나가 되었다고 해서, 그런 육체적인 결합이 서로를 소유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이 난해하다고 해서 성급하게 포기하지는 말자. 프란츠와 '나'처럼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사이가 아니라면 도전해야 한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의 따사로움과 달콤함, 그 환희를 맛보지 않고 어찌 인생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자, 이제 상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몸을 통해 가늠해보자.

이때, 촉각은 명탐정처럼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기며 수사일지를 써나가야 한다. 그의 손짓이 사랑의 감정을 싣고 있는지, 그의 열기가 몸에 닿았을 때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지 세세하게 마음에 새기는 거다.

이렇듯 사랑을 시작한 이들에게 육체적인 확인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감기처럼 순식간에 들어온 사랑의 바이러스가 오래오래 내 몸을 부드럽게 순환하길 원한다면 식육식물이 그려있든, 단색의 침대 시트든 그 위에서 사랑을 확인해 보시라.

단, 소유하는 마음은 저 밤하늘로 날려 보내고, 솜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오롯이 그와 하나 되어 기쁨을 누리시길. 그렇게 사랑이 주는 선물을 온몸으로 짜릿하게 만끽하시길.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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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장 2018-08-01 18:29:54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뿐... 그러네요...

빅팬 2018-07-30 21:36:27
프란츠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안타깝네요
소유할 수 있는 사랑은 없다는 말 명심하고 갑니다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신이가 2018-07-30 10:21:07
이지운작기님 껀 읽을거리가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