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에 가고 싶다] 사랑의 온도는 36.5
[그 성에 가고 싶다] 사랑의 온도는 36.5
  • 이지운 작가∙시인
  • 승인 2018.07.19 23:3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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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중략) 사랑 없이는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고 심지어 꿈도 꿀 수도 없어요… 차가운 피가 흐르는 물고기 같은,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려요…"

이렇게 외치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현대 영문학의 제인 오스틴'이라 평가받는 애니타 브루크너 작가의 <호텔 뒤락>의 주인공 이디스 호프다. 사랑이 없다면 차가운 피가 흐르는 물고기가 되어 버린다는 유명한 로맨스 소설 작가인 이디스는 마흔이 다 되도록 독신으로 산다.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유부남과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사랑을 꿈꾼다.

그녀는 유부남인 데이비드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제프리의 청혼을 받아들이지만, 이내 마음이 바뀌어 결혼식에 불참하며 스위스의 호숫가 호텔인 뒤락으로 도망치듯 떠난다. 그곳에서 네빌에게 다시 청혼을 받지만, 다른 여자의 침실에서 나오는 그에게 환멸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간다.

호텔 뒤락에서 그녀는 돈 많은 귀족 여인들을 만나고, 자신과는 다른 그들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네빌은 청혼을 하면서 이렇게 설득한다.

"지금 하고 있는 걸 하면 돼요. 훨씬 더 나을 거요. 원하면 글을 쓸 수도 있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게 될 거요… 당신한테 필요한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되는 겁니다. 자기 확신과 세련됨도 생길 거고요. 그리고 당신이 나의 명예가 되니 만족감도 있을 거고 말이죠..."

▲ 애니타 브루크너 작가
▲ 애니타 브루크너 작가

과연 이 생각이 맞을까. 며칠 본 게 전부인 사랑도 하지 않는 여인에게 사업 제안하듯 청혼하는 그는 말하자면 트로피 와이프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랑 없인 살 수 없는 여인과 사랑 없는 결혼을 제안하는 남자. 둘은 뜨거움과 차가움의 극렬한 대조를 이루며 우리에게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자, 우리가 사랑하게 되면 가장 먼저 깨닫는 신체 조직은 심장이다. 심장은 호감이 가는 그에게 뇌가 판단하기도 전에 쿵쾅거리는 강렬한 시그널을 보낸다. 그런데, 그런 발 빠른 뜨거운 심장에게 얼음물을 끼얹는 것은 '이성'을 관장하는 뇌다.

이성은 상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상대의 외모,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의 온갖 정보를 분석하며 계산기를 두드려댄다. 말하자면, 사랑해도 손해가 나는지, 어느 시점에 이익을 낼 수 있는지 끊임없이 분석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힐난하는 어머니의 왜곡된 남성상으로 인해 건강한 남자를 거부하게 된 이디스는 누군가의 검증을 거친 유부남에게 의지하고 사랑의 샘물을 흘려보낸다. 그는 매력적인 아내가 있음에도 이디스에게 어떤 옷도 필요치 않은 나체의 시간을 허락하며 탐닉한다.

다섯 권의 로맨스 소설의 성공으로 '결혼은 선택, 직업은 필수'라며 독립적인 사랑과 삶을 사는 듯 보이는 그녀는 왜 한물간 아이템처럼 여긴 결혼으로 방황하는 것일까.

이열치열이라고 했듯 뜨거운 여름철, 더 뜨거운 섹스를 떠올려보자. 섹스야말로 매우 독립적인 행위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위험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독립적인 섹스를 매우 간단하게 구별하는 방법은 키스와 손의 터치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내 몸이 그의 몸과 맞닿는 지점으로,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첫 번째 연결 통로다. 그 손이 상대의 목덜미를, 단단한 가슴을 훑을 때 어찌 심장의 요동이 없을까. 만약, 사랑 없는 상대라면 그 행위는 소름 끼치는 공포로 변한다.

일과 사랑에 균형을 맞추기 힘들어하는 이 시대의 이디스들이여. 한쪽에 힘을 실으면 한쪽은 올라가는 시소와 같은 이분법적인 사랑에서 벗어나자. 사랑 때문에 일도 버리고, 감정마저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사랑이다.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온도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36.5도다. 뜨거워서 이디스처럼 마음에 화상을 입거나 네빌처럼 차가워서 동상을 당할 필요가 없다. 흠뻑 적셔도 상처를 받지 않으며 우리 몸의 온도와 같아 적응력도 뛰어나니 얼마나 완벽한 온도인가 말이다.

이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구름처럼 사랑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이들이여. 다시 오지 않을 뭉게구름에 아쉬워하지 말고, 구름 같은 그의 손을 꼭 잡기를. 그리고 독립적인 섹스를 시도하길.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36.5도의 사랑을 365일 즐기시길.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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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장 2018-07-22 14:58:14
끝까지 다보고 나면 사랑학 박사가 될 듯...

빅팬 2018-07-21 18:23:36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신이 2018-07-20 09:51:53
사랑의 온도는 뜨겁지 않군요.

알바트로스 2018-07-20 08:34:28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

아프로디테 2018-07-20 06:21:37
결혼은 선택
직업은 필수~~
아름다운 가정 안에서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