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계절인가 했더니 어느덧 담장마다 능소화가 한창이다.

어디 담장뿐이겠는가? 타고 오를 곳이 있다면 전봇대도 좋고 다른 나무 신세도 마다하지 않는다.

목련꽃이 눈물 떨구듯 뚝뚝 떨어진지도 불과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천지는 한여름 능소화의 화관무로 화려하다.

능소화의 꽃말은 여성, 명예, 그리움이라 한다. 임금을 그리다 죽은 궁녀 소화의 넋이 담장에 묻혀 그대로 꽃이 되었다는 능소화. 예전에는 주로 양반집에 심었고 어사화(御賜花)로도 사용되었던 기품있는 꽃이다.

지난 7일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3차 집회'가 열렸다. 붉은 옷으로 통일한 여성들이 성차별철폐를 외치며 한여름 도심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지난 5월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용의자인 20대 여성이 '이례적'으로 신속히 검거되었는데 이를 남성 용의자 검거 때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사건 정황상 빠른 수사가 가능했을 뿐 편파성은 없었다"는 경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집회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집회가 여론과 온라인의 지지를 얻는 데는 다소 실패한 느낌이다. 특히 지난 2013년 한강 마포대교에서 자살한 남성연대 고 성재기를 빗대 "문재인은 재기하라"는 구호는 지나쳤다는 게 중론이다.

고인의 이름이 반대편에게 혐의를 뒤집어 보여주는 미러링(Mirroring)으로 쓰인 것이다. 지난해 10월 교통사고로 숨진 배우 고 김주혁도 미러링 대상이 되었다. 주최측의 본의가 아니었다 해도 집회의 본질을 오해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아직까지 여성들이 사회전반에서 남성에 비해 상대적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왜곡된 구조에 맞서는 여성들의 참여와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운동은 그를 지지하는 세력과의 연대로부터 힘을 얻는다.

목표는 명확하지만 주장은 정제돼야한다. 주최 측도 역공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자기목소리를 내고 제도적 변혁에 대한 의지를 표출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도 한가지 주장만 부각하지 말고 저변에 담겨있는 그들의 눈물도 함께 봐야 할 것이다.

머지않아 능소화 또한 목련꽃처럼 눈물지듯 통째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여름은 반복되고 능소화의 기품도 변함없이 당당할 것이다. 장맛비에 속절없이 떨어질지라도 결국은 푸른 하늘을 이고 사는 굳건함으로 꽃피우길 바란다.

능소화의 꽃말처럼 여성의 명예가 우뚝 서고 양성평등이 그리움이 아닌 현실로 다가서길 고대하며 함께 힘을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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