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을 대표하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에서 초점이 되는 것은 '○○답다'입니다. 이는 지녀야 할 정체성을 그 사람이 제대로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폭행한 사건으로 재판이 열렸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재판은 따로 변호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여러 배심원들 앞에서 원고와 피고가 직접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만약 재판정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스스로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해 배심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유죄로 판정됐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는 저를 때리셨습니다. 그때 왜 저를 때리셨습니까?" 아버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매였다. 너더러 잘 하라고 훈계한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의 매를 드는 것도 죄냐?" 아들이 반론을 펼쳤습니다. "저도 아버지께 배운 대로 아버지를 사랑해서 때렸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여러분이라면 젊은이의 이 궤변에 뭐라고 답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답다'라는 말에서 답을 찾습니다. 재판정에 온 이 젊은이는 아들다움을 잊어버렸습니다. 분명히 자신이 존속폭력을 저질렀는데, 이를 무마하기 위해 아들다움이 아니라 아버지다움으로 자신을 위장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어릴 적에 사랑의 매를 들었다고 해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사랑의 표시로 폭행했다는 궤변이 나오는 사회는 결코 '○○답다'가 지켜진 정의로운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어떤 이들은 '○○답다'라는 말에 견강부회(牽强附會)의 해석을 곁들여 엉뚱하게 남을 억압하는 사회적 기제로 악용했습니다. 독재 지향적인 지도자들이 한국에서 정권을 잡고 있었을 때 그들이 흔히 썼던 구호가 '학생은 학생답게 학교에서 공부나 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그들은 우리 사회의 학생들에게 오직 책이나 읽고 학문적인 실력이나 쌓으라는 학생다움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정치인다움을 버리거나 지키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학생다움을 특정한 활동으로 국한시켜 중·고등학교, 대학교라고 써 놓고 입시대비학원, 취업기술습득학원으로 읽으라고 합니다. 이는 사회가 자신들이 져야 할 몫을 학생들에게 모두 넘기기 위해 그들의 정체성을 특정한 방향으로 제한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짐을 타인에게 넘기려고 하거나, 그것으로 타인의 정당한 자유 활동을 억압하려는 언행은 자신의 몫을 자신이 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기꾼 심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삶의 권력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힘이고 매력은 남이 나에게 주는 힘입니다. ○○다움을 지키기 위해 이 두 힘을 내가 드러내야 합니다. 이 두 힘에 대한 광고를 다른 이에게 넘기거나 다른 이의 ○○다움을 자기 것인 양 함부로 가져다 쓰는 것은 건강한 행동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정체성으로 '나'라는 생명이 가진 신비로움을 스스로 지켜나가야 합니다.

삶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온 사람만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삶이 가진 신비로움으로 인해 내 몸이 희망을 가지고, '나는 나답다'라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 이때 내게 주어진 삶의 정체성인 ○○다움을 지키며 견딤으로써 희망을 봐야 합니다. 내가 '나다움'을 견디지 못하면 다른 이가 대신 견뎌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의 십자가를 자신이 지고 구원의 길로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0:38).

6월입니다. 자신의 몫을 자신이 지시고 산화(散華)하심으로써 이 땅을 지키신 분들을 기억하는 달입니다. 고맙습니다, 자신의 몫을 지시고 호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시여.

■ 정이신 논설실장·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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