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 전 우주에서 지구인의 인체보다 위대한 졸작도 없고, 못난 대작도 없다. 이러한 단언은 두개골 옆에 달린 귀만 봐도 충분하다. 발은 왜 그렇게 우스꽝스럽고, 내장은 왜 그렇게 징그럽게 생겼을까. 하나같이 웃고 있는 해골은 아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어떤 의미에서 지구인들은 죄인의 신세나 다를 바 없다. 진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에스파냐 문학의 거장인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소설, <구르브 연락 없다>의 한 구절이다. 사라진 동료를 찾아 나선 외계인의 탐사 일지라는 독특한 형식의 이 소설은 우리의 삶을 외계인의 시각에서 재조명한 매우 흥미로운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호응 속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1992년 올림픽을 뜨겁게 기다리던 바르셀로나에 두 명의 외계인이 도착한다. 현지 조사를 위해 지구인으로 변신한 구르브가 밖으로 나간 뒤에 연락이 끊기자, '나'는 동료인 구르브를 찾아 거리 곳곳을 누빈다.

필요할 때마다 변신이 가능한 '나'는 철학자, 배우 등으로 변하며 지구인들과 우정을 나누고, 술과 음식에 빠져든다. 끊임없는 사건과 사고가 이어지는 바쁜 현대인의 삶은 순진한 외계인에게는 낯설지만, 매력적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구르브를 찾게 되고, 두 외계인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지구에 남는다.

▲ 에두아르도 멘도사 작가
▲ 에두아르도 멘도사 작가

"06:11 나는 다시 잠에서 깨어난다. 문득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아니, 아니다.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집이 진정한 안식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여자. 그래, 여자다. 하지만 지구에서 나와 함께할 여자를 어디서, 어떻게 만난다는 말인가?…"

외계인은 자신의 안식처에 여자가 없다는 공허함을 깨닫고 거리를 헤맨다. 마치 이 모습이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하듯 느껴진다. 혹시 우리도 그들처럼 지구에 남은 외계인은 아닐까.

지금 따끈따끈하게 연애 세포가 움직이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 이성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존 그레이 박사의 외침을 고려하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듯,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 온 것을 말이다.

지구인 여자가 이야기하는데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인 '나'처럼 같은 언어로 이야기해도 남자와 여자는 다르게 인식할 때가 많다. 남자가 느끼기에 여자들은 너무 복잡하고, 여자가 느끼기에 남자는 너무 단순하다.

그런데, 그것은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는 문제다. 만약에, 여자와 남자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같은 것을 느낀다면 지금처럼 싸우지 않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거다.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고, 다르기 때문에 용서가 되고, 다르기 때문에 더 절절하게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르기 때문에 격렬한 섹스도 가능한 것이다.

좋은 책에 기승전결이 잘 짜여있듯, 5분을 넘지 않는 명곡에는 반드시 기승전결이 있다. 기승전결이란, 단순한 직선의 구조가 아닌 파도처럼 출렁이는 곡선을 뜻한다.

이렇듯 아름다운 사랑에도 반드시 기승전결이 필요하다. 다름을 인식하는 것, 다름으로 갈등하는 것, 다름으로 짜릿함을 느끼는 것. 다름은 우리에게 이런 기승전결의 아찔함을 던져준다.

자, 우리는 왜 구르브와 '나'처럼 지구에 남겨진 걸까. 당신과 다른 존재를 찾기 위해서는 아닐까. 밉다가도 사랑스러운 존재,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결심해도 또 만나고 싶은 존재. 그런 존재를 찾기 위해 당신은 밤새 거리를 헤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나 말이다.

세련되고 아찔한 여자로 변신한 외계인 '구르브'처럼, 지적인 철학자로 변신한 외계인 '나'처럼 그렇게 변신해보자. 이런 변신은 다른 존재를 만나기 위한 에피타이저이자, 둘의 관계를 무르익게 하는 전희와 같다.

오늘도 경품 이벤트의 공짜 상품처럼 사랑을 날로 먹으려는 자들에게 경고한다.

화끈하게 변신하고, 다름을 즐겨라. 그렇지 않으면 지구에 남은 것을 평생 후회하고 말 테니…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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