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널 쳐다보지 않아. 방 안의 불빛이 두렵기라도 한 듯, 그녀는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해. 드디어 그녀의 두 눈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그 안에서 너는 거품을 일으키며 파도치다 이내 잠잠해지곤 다시 파도를 일으키는 초록빛 바다를 발견해. 그 눈망울들을 바라보며 넌 꿈이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여. 여태까지 보아 온, 그리고 앞으로도 볼 수 있는 그저 아름다운 초록빛 눈일 뿐이라고 말이야. 그런데도 끊임없이 출렁이며 변화하는 이 눈은 오직 너만이 알아볼 수 있고 열망하는 그 어떤 풍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어…"

참으로 신기한 소설이다. 흔한 3인칭 시점이 아닌, 1인칭 시점은 더더욱 아닌, 2인칭 시점이라니. '너'가 말해주는 이야기의 신기함과 몽환적인 느낌, 게다가 고딕소설이라는 환상적인 느낌까지 곁들여진 이 소설의 제목은 무얼까.

이는 환상 소설의 대가인 멕시코의 카를로스 푸엔테스 작가의 소설 <아우라>다. 초록빛 눈의 아름다운 여인인 아우라를 만났을 때 펠리페 몬테로는 파도와 바다를 발견한다.

단편에 가까울 만큼 짧은 분량의 소설 <아우라>의 이야기는 이렇다. 젊은 역사학자인 펠리페는 신문 광고에 실린 회고록 정리 일을 하기 위해 콘수엘로라는 귀족을 찾아간다. 그녀는 남편의 회고록을 정리하면 거액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그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의 집에 머무를 것을 요청한다. 펠리페는 요렌테 장군의 회고록을 읽는 동안 환상을 체험하며, 그녀의 조카인 아우라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어떤 손이 네 얼굴과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게 느껴져…(중략) 그녀는 네 위에 포개어 눕더니 키스를 하고 입술로 온몸을 더듬는 거야. 별빛도 없는 밤의 어둠 속에서 너는 그녀를 볼 수는 없지만, 그 머리카락에서 안뜰에 있던 화초 향을 맡고 그 품 안에서 널 갈망하는 매우 부드러운 피부를 느끼고, 예민한 핏줄로 뭉쳐진 꽃봉오리 같이 피어오른 젖가슴을 만져…"

▲ 아우라를 쓴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
▲ 아우라를 쓴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

결국, 펠리페는 아우라를 사랑할수록 콘수엘로의 마수에 사로잡힌 불행한 운명에 불안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우라의 벌거벗은 몸을 어루만지는데, 결국 그녀가 콘수엘로의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콘수엘로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젊은 요렌테 장군을 불러들이고, 펠리페를 사랑의 나락으로 빠지게 한다.

백 살이 넘은 콘수엘로는 죽음의 문턱에서 젊은 남편과의 조우를 꿈꾼다. 그녀는 사랑의 확신을 울부짖는 것이다. 과연 사랑은 어떤 결말을 그녀에게 선물할까.

백설 공주도, 신데렐라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난다. 사랑은 과연 해피엔딩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20대 여성에게 묻는다.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사랑은 치열함이죠." 졸업하고 간신히 회사에 취직한 그녀는 현실의 치열함을 사랑에도 연속시킨다.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전쟁처럼 살아갈 텐데, 어떻게 해피엔딩이겠어요?" 30대 엄마는 전쟁과 같은 현실을 조금 더 증폭시키며 해피엔딩을 부정한다.

"저는 섹스를 할 때 현실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아요." 10년 차 남편은 육아의 어려움, 가장으로서의 경제적인 부담을 섹스를 통해 위안받는다고 한다. 애정의 아름다운 퍼포먼스인 섹스는 그에게 있어 해피엔딩의 소망을 품게 만든다고. 그렇다면, 아우라를 품에 안았을 때의 펠리페처럼 모두 행복한 결말을 얻을 수는 없을까.

"진짜 죽어도 좋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환상적인 섹스를 해봤냐는 질문에 50대는 죽어도 좋다는 답을 남긴다. 오르가즘이라는 절정의 끝에서 그 쾌락이 죽는 순간까지 이어지기를 그는 바랐던 것이다. 30초 정도의 짧은 절정에서조차 인간은 해피엔딩을 꿈꾼다.

간혹, '내게도 황홀한 섹스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면,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때는 깨닫지 못했던 인생의 황금기를 말이다.

오늘도 일터에서, 가정에서 '행복’이라는 말과는 상반된 북극의 추위를 견디는 이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사랑은 해피엔딩인가요?"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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