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필요한 물건을 사러 대형마트에 가면 사방이 빼곡히 상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나같이 구매욕을 자극하는 디자인으로 자신이 간택되기를 기다리는 듯합니다. 잠깐 이성을 잃으면 애초에 사고자 했던 것보다 더 많은 물건들이 카트에 담겨집니다. 그 중 태반은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닙니다.

집안을 휘휘 둘러보니 사는데 꼭 필요치 않은 물건이 집안 공간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날 밤 집안의 온갖 잡동사니에 눌려 가위눌리는 꿈을 꿉니다. 내 한 몸 제대로 쉴 공간조차 없이 짐으로 꽉 찬 집에 갇혀 있는 꿈입니다. 공간이 없는 집은 이미 집이 아닙니다.

그릇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담아 줍니다. 그런데 그릇에 공간이 없다면 어떨까요. 음식을 담아야하는데 속이 채워져 있다면 그릇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물 한 잔 마시고 싶은데 컵 속이 채워져 있습니다. 아무리 신선한 물을 따라도 그대로 넘쳐 마실 수가 없습니다. 컵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거지요.

바퀴살이 중간 중간 비어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모두 채워져 있다면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높으신 분의 엉덩이는 견뎌내지 못할 겁니다. 비움은 언뜻 손해인 것 같으나 비움이 있어 새로움이 채워지고 이로움도 함께 주어집니다.

한때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나 '비움'에 대한 글을 읽으면 속 편한 사람들 이야기로 치부했습니다.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감할겁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채움과 비움은 동일한 가치와 인과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 김춘만 논설위원
▲ 김춘만 논설위원

우리의 생식구조도 그러하고 경제활동 또한 그렇습니다. 배출 기능이 없으면 먹는 기능도 필요 없고 소비가 없으면 수입도 필요 없습니다. 쉬고 싶으나 내 머릿속이 꽉 차 있으면 제대로 쉴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신을 믿는 이유 중 하나는 주어진 짐을 떠넘기기 위해서입니다. 삶에 대한 고통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은 무척 바쁘신 분입니다. 때로는 스스로 비우고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할 겁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미움을 버립시다. 미워한다고 본인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닌 그 사람 문제입니다. 고민하지 마세요. 고민한다고 해결된다면 평생 고민만 하고 있을 겁니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위도일손(爲道日損)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도를 닦는 것은 날마다 비우는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봄이 옵니다. 이미 저만치서 아지랑이를 타고 오는 것 같습니다. 대지라는 그릇은 겨우내 모든 것을 비우고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푸른 생명과 풀잎들의 흐드러진 웃음과 천지를 진동하는 향을 담아내겠지요.

자연은 일부러 도를 닦지는 않지만 비움의 법칙만큼은 확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봄 처녀 빈 바구니 / 봄바람에 출렁 인다 / 귀밑머리 부끄럼에 / 살포시 돋은 홍조 / 내 바구니 비인 채로 / 임 마음만 담아 간다

오래전에 끄적인 낙서처럼 그렇게 봄을 맞이해야겠습니다. 내 바구니에 올 봄 무엇이 담길지 기대됩니다.

■ 김춘만 논설위원 = 기계와 행정학을 전공했다. 전국 근로자 문학제 수필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는등 글쓰기를 즐겨했다. 세이프타임즈 제10기 기자스쿨을 수료하고 생활안전에디터를 거쳐 논설위원으로 재능기부하고 있다. 현재 (주)현대포스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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