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트다운·스펙터 결함" … 인텔 수개월 전 알고도 '쉬쉬'
보안업계 "취약점 차단 패치 업데이트시 속도 저하 우려"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인텔의 컴퓨터 반도체 칩에서 해킹에 노출되기 쉬운 결함이 수년 간 방치돼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함은 인텔 경쟁사인 AMD, ARM홀딩스의 칩에서도 발견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세계 각국에서 나온 PC, 모바일 기기 등이 개인정보 해킹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 국내 보안업계는 일반 PC사용자의 경우 당장 피해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패치(수정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권고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업데이트시 속도저하 등 컴퓨터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CPU를 대량으로 쓰는 클라우드 업체와 금융권이 특히 취약할 수 있다며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 CPU 메모리 내 중요 정보 해킹 취약점 확인

4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구글 연구원, 학자, 업계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보안 전문가들은 인텔, AMD, ARM홀딩스의 반도체 칩에서 해킹에 취약한 결함인 '멜트다운'(Meltdown)이나 '스펙터'(Spectre)가 발견됐다고 3일(이하 현지시간) 밝혔다.

두 취약점은 컴퓨터 내 CPU(중앙처리장치)가 처리하는 중요 정보를 훔쳐보는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

멜트다운은 인텔 칩에서 발견됐으며, 해커들이 하드웨어 장벽을 뚫고 컴퓨터 메모리에 침투해 로그인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훔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대해 인텔과 ARM 측은 설계 결함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스펙터는 인텔, AMD, ARM홀딩스의 칩에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들 3사가 세계 컴퓨터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세계 각국에서 최근 나온 데스크톱,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인터넷 서버 등이 해킹에 취약한 결함에 그대로 노출됐다는 우려가 커지게 됐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대니얼 그러스 박사(그라츠 기술대학교)는 "멜트다운은 지금까지 나온 CPU 결함 중 사상 최악의 하나로 꼽힐 것"이라고 말했다.

멜트다운은 단기적 측면에서 더 심각한 문제지만, 소프트웨어 패치(수정 프로그램)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스 박사는 설명했다.

반면 스펙터는 해커들이 침투하기가 조금 더 어렵긴 하지만 패치로도 바로잡기 어렵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텔은 특히 구글 연구원들로부터 수개월 전 문제의 결함에 대해 인지하고도 그간 별다른 조치를 밝히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애플의 '배터리 게이트'에 이어 '제2의 IT 게이트'로도 번질지 주목된다.

인텔 최고경영자(CEO)인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3일 CNBC 방송에 나와 "우리는 구글로부터 상당한 시간 이전에, 수개월 전에 통지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영국 IT 전문 매체인 레지스터가 2일 관련 의혹을 제기하면서 일파만파 확산했다. 취약점을 최초 인지한 구글도 3일 이번 사안을 블로그에 올렸다.

구글은 애초 9일 해당 취약점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언론 보도가 먼저 나오면서 일정을 당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텔은 논란이 불거진 뒤인 3일에야 성명을 내고 "우리 제품에만 결함이나 버그가 있다는 보도는 정확하지 않다"면서 "이에 대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다음주에 공개할 계획이었지만 부정확한 보도가 나오고 있어 성명을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AMD는 "우리 제품에는 현재로서는 위험이 없다"고 밝혔고, ARM홀딩스는 아직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다.

◇ 국내 보안업계 '업데이트' 권고…'속도저하' 우려 제기

보안업계는 패치(수정 프로그램) 업데이트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CPU)의 설계 결함이기 때문에 사후 조치도 마땅치 않다는 설명이다.

패치는 CPU의 중요 메모리 영역에 접근 가능한 기능을 비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취약점을 차단한다.

구글은 이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크롬 브라우저와 클라우드 플랫폼 등에 해당 취약점과 관련한 패치를 업데이트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전날 윈도 10 패치를 배포했고, 윈도 7와 8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일반 사용자는 운영체제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는 게 좋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국내 기업에 패치 업데이트와 관련한 내용을 공지했고, 일반 이용자를 위해 보호나라 홈페이지에도 해당 내용을 공지할 예정이다.

하지만 패치 적용 후 CPU 성능이 최대 30% 저하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레지스터는 익명의 프로그래머들을 인용해 이러한 잠재적 부작용을 경고했다.

하우리 최상명 실장은 "해당 취약점은 웹브라우저에 자동 저장한 비밀번호 등 중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일종의 통로인 셈인데 패치가 있어야 해결된다"면서도 "패치를 업데이트해도 성능이 저하될 우려가 있어 일단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안 전문가들은 당장 피해는 크지 않을 수 있지만, CPU에서 중요 정보가 유출되는 취약점이 확인된 만큼 후폭풍을 우려한다. 우선 CPU를 대량으로 쓰는 클라우드 업체와 금융권이 특히 취약한 것으로 꼽힌다.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김승주 교수는 "해커들이 최근 CPU의 설계상 오류를 찾는 데 집중하면서 당분간 하드웨어 취약점이 계속 발표될 것"이라며 "다른 칩 제조사들도 유사한 문제를 막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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