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미노타우로스는 사람을 잡아먹는 '반인반우' 괴물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성으로 미노타우로스는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미궁, 라비린토스에 갇히게 된다.

결국 테세우스에게 미노타우로스는 죽게 되는데 테세우스가 미궁에 들어가 출구를 찾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들어갈 때 실을 가지고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테세우스에게 실은 생명이었고, 미궁의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였다.

소방에서도 테세우스의 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들어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위험천만의 재난현장에서 소방관의 눈과 귀가 되고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무선통신이다.

제천스포츠타운 화재 현장으로 가보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시커먼 연기, 눈앞에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LPG 저장소, 무섭게 타오르는 화염, 이같은 상황에 소방관 각자가 마주하고 있다.

현장 대원들은 눈앞에 보이는 상황과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된다. 동료와 대화도 불가능하다.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 이외에 더 긴급하거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알 수 없다. 가끔은 자신의 옆에 누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안면 마스크와 개인장비들, 그리고 현장의 소음에 소통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현장'이라는 미궁에 빠진 소방관에게 테세우스의 실, 무선통신은 단절된 모든 것을 연결하는 수단이 된다.

모든 정보와 현장에 대한 이해가 무선통신에 의해 이루어진다. 현장에서 무선통신은 절대적이다. 소방관의 눈과 귀가 되고 현장의 전체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선통신이다. 제천화재 현장의 소방관은 어땠을까.

재난현장을 지휘하는 곳을 소방서는 '지휘팀'이라고 한다. 팀장이 현장을 장악하고 모든 현장을 지휘한다. 매우 중요한 조직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 서대문소방서와 제천소방서 지휘팀을 비교(사진)해 보자. 

인력을 보면 제천소방서는 한팀에 지휘팀장과 화재조사관 2명이다. 지휘차를 운전하는 인원이 별도 센터에 있다고 하니 그래도 3명이다. 서울 서대문소방서 지휘팀은 6명이다. 2배가 많다. 단순히 인력이 많다는 것이 아니다. 현장지휘와 통제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휘팀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모든 현장의 눈과 귀가 되는 무선통신을 지휘팀에서 운용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보자. 서대문소방서는 통신이라는 전문 무선통신 소방관이 있다. 통신담당이 현장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통신을 장악하고 모든 정보를 대원에게 전달하고 지휘부와 연결한다.

제천소방서 지휘팀에는 그 중요한 통신전담 요원이 없다. 어찌된 일일까. 하지만 지방은 거의 대부분 통신이라는 전담인력을 배치해 두는 곳이 없다. 물론 인력이 부족해서다.

그럼 누가 통신을 할까. 대부분 화재조사 소방관이 통신을 겸한다. 그러다보니 그 통신이라는 것은 서울처럼 현장 전체를 장악하는 통신이 아니고 단편적인 통신에 그치고 만다.

▲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장·서대문소방서
▲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장·서대문소방서

소방관의 눈과 귀가 사라진 것이다. 제천화재가 발생하고 마무리된 9시간 동안 자유한국당 홍철호의원이 확인한 제천소방상황실 녹취된 무선횟수는 9번에 그쳤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경악할 일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현장지휘는 불가능하다. 이정도면 현장의 대원들은 '지휘가 없는' 각자가 알아서 움직였을 것이다.

제천화재 당시 구조대원들은 유가족들이 주장하는 것 처럼 '70여차례 2층에 갇힌 사람들이 있다'는 신고내용은 무선통신을 통해 못 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무전기가 전혀 통신이 안됐다고 한다. 상황실 구조요청의 무선통신이 대원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희생자들과 함께 허공에서 사라졌다.

폭주하는 무선통신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채널을 두 개 사용하는 서울과 하나만 사용하는 제천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다.

우린 이같은 치명적인 문제를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평소에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소방당국도 문제다.

하지만 모든 인력충원과 예산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충북도지사는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늘도 각 시·도지사들은 불순한 의도를 의심받으며 소방의 국가직화를 반대하고 있다.

책임은 지지 않은 채 권리만을 주장하고 있다. 이유가 어찌됐건 과거 그들의 과오는 생각치 못한 채 미래의 이익에 권리만을 주장하고 있다. 반복되는 후진국형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제천화재 참사의 숨은 공범자는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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