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과 서울소방을 모두 근무한 필자의 경험을 근거로 제천화재의 초기 대응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현장상황을 온전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추정에 근거한 주장은 논외로 한다.

제천화재 참사 중 가장 이슈가 되는 또 한 가지는 '초기 소방관서의 대응이 잘 못됐다'는 주장이다. 먼저 늑장 대응의 문제다. '골든타임 5분'은 지켜졌을까. 소방 최초 도착이 7분 후였으니 골든타임은 사수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골든타임 5분에는 두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 화재현장에서 생존자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간, 초기 화재를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하지만 이 5분이라는 것은 통상적인 화재의 발생과정을 이야기할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가연물의 상태, 유독가스의 성분 등 화재발생 여건에 따라 골든타임으로 확보할 수 있는 두 가지 요소는 짧아지거나 늘어날 수 있다.

제천화재는 어떠했을까. 공개된 CCTV 영상을 보면 신고를 접수하고 3~4분 만에 검은 연기와 화세가 삽시간에 주차장을 덮치고 2층까지 치솟았다. 상식선 보다 빠르게 화재가 진행됐다.

5분 도착이라는 시간은 불법주정차 차량으로 늦어졌다고 해도 화세는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나 빠르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추측되는 상황은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만큼 그 원인을 제외하더라도 설상가상으로 드라이비트 공법의 스티로폼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는 생존자의 생존 시간을 더욱 단축시켰을 것이고 화세를 더욱 빠르게 진행시켰을 것이다.

제천화재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골든타임이 단축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이미 여러 가지 요인으로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상황에서 소방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단 한 가지다. 물량공세다.

초기에 집중적인 인력·장비(소방력)를 투입해 놓쳐버린 골든타임을 극복하는 것이다. 화세를 압도 하는 소방력으로 화재현장을 제압하는 것이다. 

하지만 충북, 제천의 소방력은 그것이 가능했을까. 지방에서 근무한 필자의 경험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제천화재에 소방력이 부족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장·서대문소방서
▲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장·서대문소방서

서울소방과 비교해보자. 여기서 한 가지 알고 넘어가자. 초기 대응 소방력이란 화재가 발생해서 최초 현장에 도착하는 소방력을 말한다. 서울소방은 센터가 116개다. 서울면적이 605㎢ 이니 한 센터가 5.2㎢를 커버하는 셈이 된다.

이에 비해 충북소방은 37개 센터에 면적은 7407㎢이다. 한 개 센터가 200㎢를 커버한다. 충북소방 한 개 센터가 서울 센터보다 40배 더 많은 지역을 커버한다.

서울에 근무하며 골든타임 이야기는 서울이야기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방의 골든타임은 허울 좋은 이야기다. 지방의 경우 운 좋게 센터에서 가까운 곳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그 센터는 골든타임을 확보하게된다. 지원되는 타 센터가 동시에 현장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천화재처럼 동시에 집중적인 소방력이 필요할 경우 어떨까. 10분, 20분을 타 센터가 도착할 때까지 현장 유지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구조는 생각하지 말자. 구조를 전담하는 구조대는 타 출동으로 14분 늦게 도착했다.

서울은 어떨까. 얼마 전 화재출동을 했다. 단순 음식물 조리였다. 그런데 동시에 현장에 도착한 소방차량이 몇 대였을까. 20년 가까이 근무한 필자도 '진풍경'이라 직접 세어봤다. 19대가 5분도 안돼서 동시에 현장에 도착했다.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방 근무 경험이 있는 필자는 참 씁쓸했다.

결과적으로 제천화재는 이미 지나버린 골든타임을 극복할 만한 초기 소방력 확보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놓쳐버린 골든타임을 극복할 수 없다.

그럼 가능한 소방력만으로 제천화재의 초기 대응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자. 이미 빠르게 진행된 화세에다가 2톤의 LPG 저장소도 있었다. 여기저기 대피하는 생존자들이 있었고 구조를 요청하는 요구조자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도착하자마자 1차원적인 대응상태가 아니고, 복합적인 대응이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동시에 엄청난 소방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구조를 제외하고 화재만 보자. 기본적인 화재를 진압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LPG 저장소도 동시에 지켜내야 했다. 적어도 4~5개 팀이 동시에 화재진화에만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도 작은 수관 40㎜ 아니고 65㎜ 큰 수관으로 신속하게 때려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인원은 적어도 20명 이상이 화재진압에만 동시에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초기 제천화재에 투입된 화재진압 요원이 4명이었다고 한다. 1개 팀을 운영하는 것도 벅찬 일이다. 65㎜ 수관을 사용하는 것도 수원이 확보돼야 한다. 지방에 있을 때 초기 도착한 펌프차가 65㎜ 수관은 사용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2분이면 한대의 펌프차 물이 동난다. 지원되는 차량과 수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패착이다. 그래서 지원되는 소방력이 도착 할 때까지 작은 수관으로 현장을 버티는 것이 고작이다.

서울에 근무하며 필자는 근무한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한 대의 펌프차에 5명의 적정인원으로 출동했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서울은 65㎜ 수관을 쓰는 것도 자유스럽다. 이미 출동 중에 65㎜ 수관을 사용하는 것이 결정된다. 물이 떨어질 걱정도 없고, 인원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소방관은 6953명, 충북은 1614명, 서울이 4배가 많다. 더구나 충북은 전국 최하위 소방인력 확보율이라고 한다. 현장대응의 방법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구조는 말할 것도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각각 화재진압팀, 구조팀, 구급팀이 동시 다발적으로 수개 팀이 초기에 운영돼 작전을 펴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작전을 펼 수 있는 소방력이 있어야 작전도 펼 것이 아니겠는가. 안전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한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인력 탓만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방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인명을 구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한명 한명의 소방관이 그래도 나아질 내일을 희망하며 불가항력적인 현실을 버텨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소방을 외면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고 40년 넘게 방치한 각 시·도지사는 국가직을 반대한다. 소방공무원의 사기를 살릴 수 있는 독립적 소방조직 운영을 지방분권을 이유로 반대하며 되더라도 예산, 인사, 지휘권을 다 가지겠단다. 그 뻔한 속내는 10년간 지켜봤다.

제천화재를 지켜보며 가장 두려운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또 다시 현장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지 못할까 두렵다. 내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자긍심이 밥벌이 직업관으로 전락할 것 같아 두렵다.

현장에서 쉽게 나와 구조를 기다리는 이를 포기할까 두렵다. 이미 많은 소방관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또한 두렵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그 유가족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이유가 어찌 됐건 우리가 구해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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