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제천 화재참사는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인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무엇이 참사를 불러 온 것일까. 우선 화재에 취약한 외부 마감재의 드라이비트 공법은 공사단가가 싸고 빠르다는 '경제적인 측면'이 '안전'보다 우선된 선택이 문제였다.

건축에 있어서만 그럴까.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왜 유독 소방관들의 처우나 근무환경이 열악할까. 그리고 장비며 인력이며 소방관련 환경은 왜 또 그리도 열악할까. 그건 모두 소방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경제적인 논리로 돌아간다. 소방관련 예산이나 정책들은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 경제적인 정책들이나 예산이 먼저 해결되고 난 후에 소방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진다. 그것도 '여력'이 있는 경우에 그렇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안전'은 가장 나중에 모든 것을 해결하고 난 다음에 투자된다는 암묵적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경우는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항상 겪는 일이다. 소방관은 정부조직에서도 천시된다. 안전이 천시되는 것이다.

'비상구는 생명의 문'이라는 단어를 소방에서는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비파라치'라는 행정을 펴 비상구를 폐쇄하거나 장애물을 적치한 것을 발견하면 포상금을 제공하는 등 엄청난 홍보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2층 여탕의 비상구는 막혀 있었다. 소방관으로서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비상구만큼은 소방당국의 소방점검만을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 점검 이후에 건물의 이용자, 관리자, 소유주 등 '관계인'은 언제든지 비상구를 폐쇄하거나 장애물을 적치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365일 모든 건물에 대해서 이같은 행위를 소방당국이 지켜볼 수는 없다. 평소에 건물을 이용하는 '관계인'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 일이다. 안전에 대한 의식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무관심으로 비상구는 잠겨 있었다. 생명의 문이 막힌 것이다.

소방점검때 여탕 사우나는 '여탕'이라는 이유로 점검이 소홀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런 경험은 필자도 했다. 여탕은 '특수한 환경'이다 보니 점검하기가 쉽지 않다. 여성 이용객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점검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점검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 회장
▲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 회장

필자 역시 빨리 점검을 마치고 그 공간을 나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기억이 있다. 이용객이 있는 경우는 관리자에게 "별문제 없죠"라고 확인하는 것으로 점검을 끝낸 경험도 있다. 사우나와 목욕탕은 새벽에 영업을 시작하고 늦게까지 운영되기에 이용객이 없는 상황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무턱대고 이용객을 쫓아내고 점검을 하거나, 여성들이 나체로 있는 공간에 무작정 들어갈 수도 없다. 관리자도 이상한 눈으로 점검하는 우리를 바라본다. '뭔 여탕의 소방검사를 하느냐'는 눈빛이다. 점검을 꺼려하는 관리자 입장에는 여탕이라는 것이 점검을 피하는 좋은 구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점검을 잘 못 해서도 안 되고 그런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도 없다. 점검을 하는 측도 그렇고 관계인도 마땅히 안전점검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확고했다면 어땠을까. 소방에서는 여성 소방관을 활용해 소방점검을 할 수도 있고 미리 연락해 점검시간에는 잠시 영업을 중단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남성 소방관이 소방점검을 하고, 특수한 상황을 위해 여성 소방관을 활용하면서까지 하는 경우를 만들지 못했다. 영업주도 영업을 중단하면서 까지 안전점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위탁 업체나 관계자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 역시 안전에 대한 의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불법주차 된 차량으로 진입이 늦었다. 불법주차 문제는 어디 제천 화재현장에 국한된 일일까. 재난현장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교통환경과 국민 의식수준의 문제다.

일본에 여행 간 일이 있었다. 두 가지 사실에서 놀라웠다. 골목길 이면에 주차된 차량이 1대도 없었다. 한참을 멍하니 깨끗한 골목길을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를 태운 버스기사는 식당 인근에 주차할 곳이 없자 승객을 하차시킨 뒤 10여km 떨어진 지정된 곳에 주차했다.

놀라웠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 모두에게 한 번 스스로 물어보자. 나부터 당당하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이런 문화는 시스템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법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문제는 시스템의 개선으로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의식이 바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과감한 선택도 필요하다. (화재로 고인이 된 분들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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